장항도시탐험역의 판타지 드로잉 : 보이지 않는 깊이
사람의 뇌는 특이하다. 눈이 볼 수 있는 것은 보통 2차원적으로 보지만 그 깊이와 공간감을 인식한다. 멀fl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의 깊이감의 차이를 사람의 뇌는 구분할 수가 있다. 물론 그런 점을 이용해 착시를 만들기도 하지만 모든 것에는 깊이가 있다. 하나를 보면서도 다른 깊이로 보고 다른 깊이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대상을 봄으로써 비로소 주체이자 대상으로 때문이기도 한다. 깊이는 보이는 것 속에서 암시로 남아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깊이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장항 도시탐험 역에서는 2022 자외선 회화전으로 판타지 드로잉 : 보이지 않는 깊이 (Invisible Profondeur) 전시전이 열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깊이를 얼마나 지각할 수 있을까. 세계가 진정한 깊이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림이란 색채 체계로서 윤곽선, 소실 원근법, 각도 등이 미세한 핏줄처럼 이어져 있고 공간 구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물감은 칠하면 칠할수록 어두워지지만 빛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이 합쳐지면 투명해진다. 그 빛 속에서 깊이를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작업들이 필요하다. 세잔은 빛과 색채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면서, 사물들의 깊이를 표현하였는데 색채의 교차를 통해 사물의 깊이는 회화의 표면에 등장하도록 만들었다.
그림을 그려보면 알겠지만 그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예술성을 가져야 하는지 등에 대해 고민한다.
조명으로 인해 그런지 몰라도 판타지 드로잉 : 보이지 않는 깊이 전시전의 작품들은 다양한 색채들이 뒤섞여 있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이 겹쳐 있는 가운데 윤곽이 드러난다. 깊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겉에서 보이는 대상은 명확하고 단단해 보여도 그림의 가까이 갈수록 해체되어 버린다.
우리는 보는 존재와 보이는 존재에 대해 구분을 할 수 있는가. 화면은 필자를 보지 못하지만 보는 존재로서의 필자는 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시각적 경험은 빛과 공명하여 발생하게 된다. 봄의 깊이는 많은 연습과 경험을 통해 더 깊어지고 다양해지게 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사물의 특정 포인트들을 잡아내고 그것을 공간상에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 밖의 우리 속에서는 주체가 대상이 되고 대상이 주체가 된다는 의미다.
자연을 그린 것처럼 보이고 그 생각을 이어주는 판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얼리티라는 것은 일상적 지각을 넘어, 전-인간적 방식으로 사물의 탄생을 포착하는 화가가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참 모순적인 존재다. 자제와 환희를 적당하게 균형 잡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카니발 같은 축제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즐기지 않는가. 육식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서양인이 그리스도가 고난의 시기를 보낸 것에 동참하기 전에 살코기와 끊다를 합친 Carnelevamen을 줄여 카니발을 만든 것을 보면 의미를 위해 행동을 규정하는 것 같다.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나아간다. 보이지 않는 것은 그 깊이를 자신이 지각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것은 사람의 깊이는 한계를 규정할 수가 없다는 의미로 생각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