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억하는 그만큼만 안다! (돌리네 습지)
우리는 기억하는 그만큼만 안다! (Tiantun scimus, quantun menoria tenenus) 말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회자되는 말이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우선 볼 수 있어야 하고 기억되기 위해서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의미가 생긴 기억들은 연결되어 자신이 알게 되는 그 무언가가 된다. 장소, 사람, 경험에서 떠날 때 우리가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내 심장이 다른 사람의 가슴 안에서 뛴다면 어떤 기분일까. 팔지의 의식이 밝게 타오를 때 자연과 생태가 살아 있는 문경을 회상해보았다. 기억되는 것들을 말이다.
생태의 보고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생태의 박물관이라고 표현을 했을까. 생태가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간 모든 것도 같이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죽어가는 것들이 같이 자연스럽게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것이 생태습지가 가진 모습이기도 하다.
문경은 고모산성에 올라서서 보면 작은 노력으로도 문경의 아름다운 산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해 준다. 백두대간의 조령산을 넘는 이 고갯길은 옛 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걷기 좋은 길로 고모산성을 거쳐서 지나간다. 특히 문경은 생태가 잘 살아 있어서 생태를 콘셉트로 만든 공간들이 많다.
옛길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길이다. 지금은 빠르게 갈 수 있는 길들이 많지만 옛길들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옛길의 백미 토끼비리, 영남대로 상의 허브 역할 담당했던 유곡역 등으로 이어진다. 이제 문경 생태가 살아 있으며 육지에 만들어진 습지로 거의 유일한 돌리네 습지로 가본다.
돌리네(Doline)라는 지역명은 석회암지대에 생성된 접시모양의 움푹 파인 땅을 의미하는데 동굴을 통해 비가 오는 족족 빗물이 빠져나가니 돌리네는 보통 건조한 지형의 아래에 지하부에는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씻겨나간 자리에 크고 작은 천연동굴이 형성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알 수가 없지만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습지를 볼 수가 있다.
오랜 세월 석회암이 빗물에 녹아내리고 남게 된 점토 물질인 붉은 땅, 테라로사가 돌리네에 있다. 물 빠짐이 잘 안 되는 테라로사에 물이 고이고, 식물이 자라는데 덕분에 이 지형의 주변에는 논과 오미자, 사과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습지 생태계, 초원 생태계, 육상 생태계가 공존해 731종에 이르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돌리네 습지에는 수달, 담비, 삵, 두꺼비, 구렁이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과 꼬리진달래 등도 서식하고 있다. 살다 보면 장소가 우리를 떠나기도 하는데 생태가 망가지게 되면 결국 우리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과 같다.
돌리네라는 말은 슬라브어로 계곡(valley)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도시에서 일어나면 싱크홀(sinkhole)이라고도 부른다. 돌리네는 성인상 용식 돌리네와 함몰 돌리네로 구분되는데 대부분의 돌리네인 용식 돌리네는 석회암이 천천히 용식되면서 발달하는 것이다. 이곳은 환경부 지정 습지보호지역이기도 하다. 생물다양성이 있는 돌리네 습지는 문경시 산북면 굴봉산 일대에 조성이 되어 있는데 굴봉산 정상부에 위치한 산지형 습지로 면적이 49만 4,434평방미터에 이르고 있다.
습지보호지역이란 자연생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거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희귀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이 서식 도래하는 지역, 특이한 경관적, 지형적 또는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지역을 의미하며 이곳이 발굴된 것이 11년이지만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사람은 자연 속에 살아가야 하지만 자연이 잘 보존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인간이 사라지면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는데 자연이 다시 힘을 회복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존재에서 떠나서 잃어버린 것은 우리 안에 그대로 남는데 우리 자신은 늘 함께 가는 동시에 남게 된다.
생태의 여정에서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을 아무렇지 않게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가지고 온것들이나 담배꽁초 같은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어서 피고 아무렇지도 않게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은 기본부터 잘못되었으며 바뀔 수가 없는 의미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나 행동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결코 숨길 수가 없다.
사람은 자연과 닮아 있다. 성숙한 인간은 각 단계마다 새로운 답을 찾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이해는 여러 차례 탈바꿈을 하게 된다. 아기 때는 다른 사람이 관심과 애정을 베풀어주는 그 자체다. 배우는 것이 전부이며 그것이 삶이 학생이다. 나는 나를 가장 있는 그대로의 사랑하는 모습을 볼 때 그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비로소 베풀 줄 알고 자신과 주변을 이어 줄 때 장년이 된다. 인생을 빨리 감아서 앞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은 그 누구에게도 없듯이 자연 역시 천천히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을 보여주며 때론 불확실하게 변화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