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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1. 2016

터널

이건 뭐 코미디도 아니고...

자동차 영업을 하고 있는 과장 정수는 8대를 사주겠다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며 집으로 가는 길에 터널이 무너졌다. 터널에 갇힌 정수에게 남겨진 것은 생수 두 병과 생일 케이크가 전부일뿐이다. 대형 터널 사고 붕괴 이후에 한국은 재미난(?) 일이 생기면 그렇듯이 들썩 거리기 시작하고 그 소음의 중심에 정수가 있었다. 한국은 박정희 정권 때 와우 아파트가 아주 시원하게 무너진 이후 성수대교를 비롯하여 삼풍백화점까지 찬란한(?) 붕괴의 역사가 있다. 군대에서 무언가를 만들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내년에 할 일을 만들기 위해 딱 무너질 정도의 수준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터널의 장르가 코미디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감상하겠지만 이 영화를 인재에 의한 재난 영화에 가깝다.  성수대교나 삼풍 백화점은 무너지기 전에 징후가 있었다. 그 징후를 무시해서 대참사가 일어났지만 영화 터널에서는 어떠한 징후도 없이 그냥 상황을 만들기 위해 무너질 뿐이다. 이 영화는 국민들의 공분을 이용해 관객들의 관심을 얻으려는 그런 블랙 코미디 같은 영화다. 한국의 재난 영화는 할리우드의 재난 영화와 달리 재난 그 자체를 극복하려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주로 정부나 특정 인물)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고 그 속에 피해 입은 누군가에게 초점을 맞춰서 풀어 나간다. 


상황이 아주 안 좋은 상황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상황이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 차 안에서만 갇혀 있는 것 같아 보였는데 생각보다 행동반경이 넓은 편이다. 터널에 혼자 갇힌 줄 알았는데 일찍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미나도 있었고 강아지도 함께 있었다. 무한 긍정 마인드로 언제 구출될지 모르는 터널에 갇힌 채 매우 여유롭다. 


그 정도 여유면 터널 붕괴 영화 데이라잇(1996년 개봉 영화로 뉴저지와 맨해튼을 연결하는 허드슨 강 해저 터널에서 유독 폐기물을 실은 트럭과 경찰에 쫓기던 강도 차량이 충돌하여 폭발 사고로 인해 터널이 무너진 설정)의 실베스타 스탤론처럼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정우의 원맨쇼 연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또 정부 탓만 하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정의로운 구조대장 대경만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이 전형적인 한국형 재난 영화를 답습하는 것 같은 설정이 불편하기만 하다. 

터널을 그렇게 많이 뚫고 1km가 넘는 장대터널이 전국에 수십 개가 있는 나라 한국에서 수개월 동안 구조하기 위한 터널을 뚫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이 참 어이가 없게 보인다. 그나마 구조하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은 가장 가까운 환기구 위쪽을 뚫고 내려가는 것뿐이다. 1km가 넘는 장대터널은 반드시 피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준공검사가 완료되지 않는다. 환기구 6개가 설치된 터널에서 세 번째 환기구가 있는 곳이면 중간쯤 되는 곳으로 비상전화와 비상대피로가 있을 가능성이 큰 곳이다. 

현시대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지만 현실성은 상당히 떨어져 보였다. 그 속에서 너무나 여유 있는 정수와 또 다른 여유를 가지고 있는 구조대장 대경의 캐미가 불편하게 다가온다. 아마 감독은 더 테러 라이브의 하정우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더 테러 라이브는 영화 속 상황과 연기가 매칭이 되었지만 터널은 조금 다르다. 하정우식 그 뻔뻔한 연기가 재난과는 물과 기름같이 헛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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