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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6. 2016

밀정

신념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마침 명절이라 말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도와줄 별다른 의지도 없으면서 쉽게 다른 사람의 상황을 판단해버리고 결정까지 내린다. 나라의 주권을 모두 빼앗긴 지 100년이 조금 넘은 지금 대다수의 국민들은 모두 애국자라도 된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나라를 팔고 일본에 붙어 자신의 이득을 챙기던 사람들이 너무나 이기적이고 지금 시대에 보기 힘든 그런 사람들일까?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아파트 딱지라도 팔고 재개발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상대방에게 필요도 없는 보험상품을 팔며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자기변명을 하는 사람들 모두 그런 가능성이 있다. 3~4년도 아니고 수십 년간 다른 국가의 지배가 이어질 때 사람들은 그것을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해버린다. 


역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시대의 흐름을 판단하고 국제정세를 읽는 능력을 가진 사람조차 신념이 흔들리던 시대에 일본을 상대로 소규모 국지전에서 승리를 했던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감은 확연히 떨어진다. 밀정은 실제 일제시대에 살았을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광복이라는 개념조차 모호해지고 그냥 시대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되는가를 고민하며 신념을 버려야 했던 그런 사람 이정출의 이야기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독립군의 정보를 팔아 순사가 된 이정출은 그냥 먹고살기 위해 현실과 타협한 인물이다. 을사오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야욕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광복보다는 그냥 일본에 붙어 살기로 마음먹는다. 아무리 굳센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오랜 시간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드물다. 이정출은 일본 상부에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의열단 단장 정채산을 잡을 계획을 세우고 김우진에게 접근한다. 서로 다른 속내가 있었던 김우진과 이정출은 서로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만나게 된 정채산을 만나게 된 이정출은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경성으로 폭탄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순간 이정출은 독립운동가의 피가 몸에 흐르고 있다고 착각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정채산의 카리스마에 빨려 들어가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의열단을 돕기로 마음먹는다. 한 번 인생 노선을 변경했던 것을 다시 변경한 셈이다. 인간은 로봇이 아니기에 합리적인 판단을 못할 경우가 번번이 발생한다. 사람은 누군가를 속이고 배신하면 마음속에서는 그 죄의식이 의외의 방향으로 이끌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더 악랄하게 변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의외의 관대함을 보이기도 한다.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들은 그냥 조그마한 물결에 불과했다. 제국주의의 거대한 국제 흐름에 편승한 일본은 거대한 파도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옳지 않아도 대세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인간 역시 동물이고 약자에 속하기 때문에 무리 지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기록하고 따라가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일본에 편승하기로 마음먹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자들이다. 약자들은 권력에 민감하고 자신은 약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때그때 강자(지배자)에게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이 내부 고발자에게 얼마나 적대적인지 안다면 일본에 자신의 안위를 맡긴 이정출을 대놓고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았든 간에 이정출은 이중 스파이가 되었다. 경성으로 폭탄을 싣고 가는 기차 안에서 하시모토 팀과 의열단 멤버 사이에서 적당한 줄타기도 시도한다. 의열단 멤버들이 붙잡히고 마지막 순간에 김우진에게 폭탄을 던져줄 것을 부탁받는다. 이정출은 온전히 출세를 보장받지도 못했고 역사에서 독립운동가가 아닌 밀정으로 기록될 것을 깨닫게 된다. 일본 간부 모임에 폭탄도 던지고 김장옥을 밀고한 조선인 부자도 암살했지만 그는 온전한 독립운동가로서 기록되지 않았다.


신념을 지키기 못하는 약자는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도 악행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자기비판적 시각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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