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삶인 강진의 마량항을 찾아서.
앞에 형형색색의 다양한 모양의 장난감의 재료들이 있다. 어떤 모양을 선택해서 조립을 해도 상관은 없고 정답은 없지만 그걸 만든 결과물에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삶을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재구성은 가능하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걸로 인해서 미래가 정해진다고 볼 수는 없다. 강진의 바다를 찾았다가 아주 얕은 바닷물로 인해 길이 끊어진 곳을 보니 바다의 재구성이 생각났다.
한반도와 같이 지형적으로 바다와 면해 있는 곳은 바다는 낚시를 통한 생존의 기반이자 교역을 통한 부의 원천이기도 하다. 바다 님프 같은 존재들부터 포세이돈을 필두로 하는 다양하고 바다의 신으로 이루어진 바다 신전은 그리스인들에게도 바다와 건설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하늘과 바다를 두고 사이에 사람이 살아간다. 바다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은 정말 다양하고 풍부하지만 잘 보존하는 것 역시 상당히 중요한 미래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강진의 마량항으로 가는 길목에서 색다른 풍경을 만나니 생각이 열린다.
국내 대표 서정시를 노래한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의 고향인 전남 강진은 내 안의 시심(詩心)을 일깨워주는 힐링과 감성의 여행지이며 남도답사의 1번지라는 강진의 마량항은 강진 최남단 항구다. 말을 건네주는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마량(馬良)의 마량항은 2006년 전국 최초로 ‘어촌어항 복합공간 조성사업’에 선정되며 ‘관광미항’으로 자리 잡았다.
이른 아침에 마량항에 오면 강진군수협수산물위판장에는 경매가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두들 생업이자 진심으로 경매를 하고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 본다. 필자만이 이곳에서는 이방인이다. 알베르트 까뮈가 쓴 이방인과는 다른 이방인이다. 그 이방인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맛있어 보이는 문어가 이날 경매의 중심이었다. 잘 삶아진 신선한 자숙문어의 매력은 먹어본 사람은 알 수 있다. 사진을 찍고 있는 필자를 보더니 사진을 찍으라고 자연스럽게 비켜주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철이 다가오는 요즘, 기력 회복을 위해 보양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바다에 잡아 올린 힘 좋은 문어와 서해안 갯벌의 낙지는 보양식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인조 미끼를 사용하는 연승과 달리 통발은 문어를 유인하기 위해 미끼로 정어리를 사용한다고 한다.
마량항의 수산물 위판장에는 끊임없이 바닷물을 뿌려주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돌아본다. 해산물이 정말 실한 것이 먹을만한 것들이 참 많다.
이곳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을 당시 거북선 1척이 상시 대기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었다. 마량항에 들어서면 까막섬이 수묵화처럼 떠있으며, 고금도와 약산도가 바다에 떠 있듯이 풍광을 만들어내는 마량포구는 1종 어항으로서 천혜의 미항으로 손꼽히고 있다.
잠시 머물렀지만 이곳에 일하는 사람들의 몸속 깊이 스민 그 바다 냄새. 어쩌면 이 냄새를 되살려내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 한 공간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다의 재구성은 딱히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들, 그들이 바라보던 일상의 풍경, 바다를 휘감아 돌던 냄새와 그 사사로운 것이 담긴 감각의 총체가 뒤섞인 삶의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