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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31. 2022

그레이 맨

흰색과 검정 사이의 인간은 무엇일까. 

사람의 색은 확실히 결정되어야 할까.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네 편과 내편, 빨간색과 파란색, 흰색과 검은색을 정해야 말이다. 극과 극의 상황과 대결과 대결의 상황에서도 타협점이라는 것은 있다. 사람은 항상 타협을 통해 성장하고 성장하는 가운데 마찰이 있다. 마찰이 없었다면 그 관계는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크고 작은 충돌은 일어난다. 그걸 외면하던가 그냥 받아들이는척하고 넘어가는 것뿐이다.  


영화 그레이맨은 익숙한 스토리이지만 충돌과 충돌의 영화이며 검정과 흰색의 중간지점에 그레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지금도 CIA 같은 정부기관에서는 보이지 않은 일을 해줄 사람을 위해 계속 처리할 수 있는 비인가 조직을 만들고 있다. 그레이맨도 그런 스토리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CIA의 암살 전문 요원이 우연히 CIA의 감추고 싶은 비밀을 알게 되고, CIA의 사주를 받은 킬러들의 추적을 받는 이야기다. 

코드명 식스로 불리는 남자는 말 그대로 어느 쪽에서 속하지 않지만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얼마든지 자신의 신념 따위는 바꿀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흰색과 검정은 명확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그 색과 다른 색을 그 색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말이다. 

우리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선과 악은 완전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선이 되고 어떤 것은 악이 된다. 악이 필요할 때도 있고 과도한 선이 오히려 사람들을 죽일 때가 있다. 선과 악은 그레이처럼 섞여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렇게 깔끔하게 선과 악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영화는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할 만큼 지루하지는 않다. 영화 속에서 거친 충돌을 만들어낸 두 남자와 달리 더 매력적인 것은 아나 데 아르마스였다. 강인하면서도 중간지점을 찾는 그녀는 균형을 만들어낸다.  여느 영화처럼 남자에게 기대는 이미지가 전혀 없는 독립적인 여성이랄까. 인간사회에서 양극단이 멀어진다면 결국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세상이 될 분이다. 흰색과 검정 사이에 사람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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