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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07. 2022

공간의 가치를 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한 박광우의 흔적

지금과 같이 GPS가 있고 공간 기술을 연구하는 GIS나 우주를 측정하는 인공위성을 비롯하여 삼각측량의 고도로 발달된 시기가 아니었을 때 우리는 공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땅이 어디까지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공간적으로 측량한 것은 언제였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도 일본인들은 많은 사람을 보내 조선땅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기록한 결과 임진왜란 초반 파죽지세로 몰아붙일 수 있었다. 왜군이 차마 몰랐던 것은 조선의 바다였다. 일본인들에게 바다는 빨리 통과해야 되는 공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청주의 남쪽으로 내려오면 끝자락에 충청북도 기념물인 청주 박광우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박광우 묘소가 있는 곳은 순천박씨의 묘소들이 있다. 본관 순천(順天)은 전라남도 남동쪽에 위치하며 백제시대에는 함평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승평(昇平)으로 고쳤다가 이후 여러번 지역명이 바뀌게 된다. 오늘날의 순천이라는 지명이 된 것은 1896년이다.  

이정표를 보고 안쪽의 청주 박광우 묘소로 들어가 본다. 박광우는 본관이 상주로  자는 국이(國耳), 호는 필재(蓽齋)·잠소당(潛昭堂)으로 아버지는 생원 박인(朴璘)이며, 어머니는 장유성(張有誠)의 딸이다. 글을 많이 썼지만 조선시대에 어머니의 이름이 나오는 경우는 정말 많지가 않다. 

입구에는 상주박씨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공간에 대한 가치와 의미는 과거에도 지금, 미래에도 중요하다. 지금 아무 활용도가 없어 보이는 것도 미래에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위스키를 담던 1통(1배럴 - 석유의 경우 미국 남서부에서 그 용량의 통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158.97ℓ(42갤런)) 에 석유가 담기면서 지금도 우리에게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처럼 이야기할줄 누가 알았겠는가. 

상주박씨의 조상을 기리는 공간의 문은 대통령 관저로 들어가는 문의 입구의 쓰인 것과 같다. 인의문이다.  공자가 제시한 인()이란 도덕적인본주의적인문주의적인 의미의 '사람다움', 다시 말해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말한다. 

박광우가 편찬에 참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지금으로 말하면 기술이 아닌 인력으로 만든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권별 수록 내용은 권1·2는 경도 상·하, 권3은 한성부, 권4·5는 개성부 상·하, 권6~13은 경기도, 권14~20은 충청도, 권21~32는 경상도, 권33~40은 전라도, 권41~43은 황해도, 권44~47은 강원도, 권48~50은 함경도, 권51~55는 평안도의 지리에 대한 글과 그림이 담겨 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공간마다 다르게 만들어진다. 경제·군사·행정적인 측면보다 인물·예속·시문 등이 강화되어 있어 조선 사회의 유교적·문화적 성격으로의 변모가 자세하게 담긴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시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바로 유교다. 공자 사상의 근저(根底)가 되는 것은 사랑과 자비를 겸비한 인(仁) 사상이었다.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정치보복의 한 형태가 조선시대의 사화였다. 조선시대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의 밀지를 받은 윤원형이 이기(李芑), 지중추부사 정순붕(鄭順朋) 등과 모의하여 명종의 보위를 굳힌다는 미명 아래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박광우는 1519년(중종 14) 형 박광좌(朴光佐)와 생원시에 합격하여 관직생활을 하였는데 그의 글은 문사(文詞)가 용솟음치듯 함으로써 절의와 문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1545년 사간이 되었으나 을사사화로 하옥, 이어 동선역(洞仙驛)으로 유배되던 중 장독으로 인하여 돈화문 밖에서 죽었으며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청주의 송천서원(松泉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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