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Aug 11. 2022

맑은 마음 (淨水寺)

선지식(禪知識)과 청자를 굽던 스님들의 공간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비워지고 채워지고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하는데 그 사이 짧은 시간에 혼잡한 생각이 머물기도 한다. 항상 맑기만을 바라기도 하지만 그건 사람의 바람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찰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은 그 짧은 찰나조차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람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온갖 정보가 뒤섞여 다니며 생각의 파도를 만들어낸다. 

이른 아침 강진의 한 사찰을 찾았다. 말 그대로 맑은 물이 흘러갈 것 같은 사찰 정수사다.  정수사의 원래의 명칭은 두 골짜기 계곡이 절 앞에서 합하여 흐른다고 하여 쌍계사라 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정수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정수사를 알리는 내용의 뒤로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인성이라는 것은 한 번에 형성되지 않는다. 특히 사회가 혼란할수록 올바른 가치관이라는 것을 세우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조차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때면 고요한 곳을 찾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물이 가라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현명한 스님들은 선지식을 가지고 당대의 기술을 전수해주기도 했었다. 강진의 청자 도요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정수사는 고려시대 청자문화의 전성기에 청자를 굽던 도공들에게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고 선지식(禪知識)을 수백 년에 걸쳐 전해주던 공간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대웅전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인 공포식 맞배지붕으로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 박공 면에는 풍판을 설치해두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하며 조선 중기 이후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청자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맑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에 그 탁함이 그대로 묻어 나올 수 있다. 처의 자비로움 속에서 정신 수양을 하고 마음을 닦아 깨끗한 마음으로 신비의 청자를 만들 수 있도록 기도를 올리던 정신적 귀의처 역할을 했었다.  

임진왜란 이후 퇴락의 길을 걷다가 6·25 전쟁 때 다시 사찰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던 정수사는 현재는 대부분 소실되고 대웅전, 요사채, 이름 없는 고려 도공들의 위패를 모신 도조사(陶祖祠), 응진당 등 소규모 건물만 남아 있다.

특히 배롱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것이 정수사의 특징이다. 배롱나무는 나무껍질이 거의 없어서 매끈한 느낌이다. 그래서 맑고 신비해 보일 때가 있다.  

사찰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아래 흘러내려가는 물을 바라보니 물이 맑음을 볼 수 있다. 도자기를 굽기 위해서는 좋은 흙도 필요하지만 맑은 물과 공기도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인연, 행복이라는 꽃말을 간직하고 있는 백일홍처럼 그런 인연을 만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태안 마애삼존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