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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5. 2022

옆에 서보길...

당신을 품고 삶을 읊듯이 걸어본 회연서원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그려졌다가 사라졌을까.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순간적으로 환희에 찬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게 특별했지만 지나가면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분명히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한 번에 다가온 큰 행복은 오히려 사람을 절망하게 만들 수 있다. 행복은 항상 그 크기만큼의 빈자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은 성주에 자리한 회연서원이라는 곳으로 함께 서보길 권해본다. 무흘구곡이라는 성주의 볼거리가 많은 곳의 출발점에 섰다. 지인과 함께 가본 우암 송시열의 화양구곡이나 퇴계 역시 도산으로 돌아가 도산구곡가를 지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도 만들어졌다. 문화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이 마음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간다.  

한강(寒岡)은 무흘구곡가를 지으면서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가를 차운(次韻: 운을 빌림)했다고 한다.  현도루 밖 넓은 공간에 대가천 쪽으로는 한강 정구의 신도비가 서 있고 정면과 숭모각(유물전시관) 방향으로는 무흘구곡(武屹九曲) 안내 비(碑)들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회나무는 공자를 상징하는 나무로 공자의 고향 산동성 곡부(曲阜) 공자 사당에 가면 큰 회백나무(檜柏나무)가 심겨 있다. 한강 정구가 회연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회는 공자에서 이곳이 바로 대가천 물가이니 연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경북의 하동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건물이 입구에서 이곳이 강학 공간임을 알리는 것만 같다. 회연서원 편액 글씨체는 단아한 해서체인데 한석봉의 글씨체라고 알려져 있다. 글씨를 이쁘게 쓰지는 못하지만 그림처럼 그리는 것은 잘하는 편이다. 그럼 글씨가 악필일까. 

회연서원 앞마당에는 매화가 많이 심어져 있다. 매실을 워낙 좋아하는 이가 있어서 매화나무를 보면 새로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정원을 일구어  백매원(百梅園)이라 했다는데 지금도 서원 마당에는 봄마다 매화가 만발한다. 한강 정구는 1583년(선조 16년) 지금의 회연서원 자리에 자그마한 회연초당을 짓고 후학을 길렀다고 한다.  

나무 우거진 구름 낕 숲을 한 걸음씩 나아가지 눈앞에 홀연히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시간이 합쳐져서 만든 공간에 맑은 시내 흐르다가 작은 못을 만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당에는 한강 정구를 주향(主享: 제사의 으뜸 대상)으로 모시고 석담 이윤우(李潤雨)를 종향(從享: 곁에 모셔 제사 지냄, 배향)으로 모시고 있다. 한강 정구는 도학에 빠졌던 사람이다. 학문이라는 것이 별거가 있겠는가. 결국 자신을 다스리고 바르게 서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 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그의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으로 초기에는 강당 · 사당을 위시하여 지경재(持敬齋) · 명의재(明義齋) · 양현청(養賢廳) 등의 건물이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이 한강 정구의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 이곳을 찾기도 하고 때론 힐링하기 위해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길을 어떻게 걷는지에 대해 정해진 것은 없지만 누가 옆에 서있는가에 따라 느낌과 행복은 달라질 것이다. 오늘도 큰 행복이 아닌 작은 행복이 잠시 방문했다고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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