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송림마을 솔바람 숲의 생태공간
사람의 눈은 평면적으로 보이는 세상을 어떻게 인식할까. 멈춰서 있으면 보이지 않지만 걸어 들어가면 그 깊이가 보이며 계속해서 바뀐다. 외면적인 아름다움은 여행자와 같아서 언젠가는 떠나고 말지만 마음의 아름다움은 늘 곁에 있는 친구와 같다. 깊이가 있는 아름다움은 가장 눈부신 빛을 발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이번에는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해하면서 서천장항송림산림욕장을 찾아가 보았다. 바다와 가까운 곳이지만 송림이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서천 송림마을 솔바람 숲은 바닷가 모래날림과 바람으로부터 주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1954년에 묘묙을 식재해서 조성된 숲이다. 70년생 곰솔(해송) 약 12000 본과 그 아래에는 맥문동 등 초화류가 자리하고 있다.
어디로 가든지 간에 서천의 바다를 볼 수 있는 길로 연결이 된다. 자세히 보아야 알겠지만 소나무의 열매인 솔방울은 많은 동물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준다. 소나무의 열매인 솔방울은 성숙하는데 2년이 걸리며 어린 솔방울은 술을 담그기도 하고 성숙한 솔방울은 땔감용이나 공예품의 재료가 된다.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자각하는 것은 속도를 멈추고 멈춰 서야 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에서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소나무의 아래로 다양한 초화류가 심어져 있다.
이정표에서 어디로 갈지 생각해본다. 처음에 오면 가장 돋보이는 시설을 찾지만 여러 번 찾아가 보면 안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크고 화려한 것보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이 더 정감이 간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곳까지 왔으니 바다는 한 번 보고 가야 되겠다는 결연한 생각을 가지고 바다로 난길로 나아가 본다. 사람살이의 모습은 대게가 비슷하지만 그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의 마음 풍경은 제각각이다.
중요한 것은 바다가 아니라, 바다의 의미다.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한다고 하는 것은 감각을 통해 안다는 의미다. 감각을 통해 지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나아가 그 이상까지 보게 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상상의 영역이다.
물이 빠지고 난 뒤에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할 것처럼 육지에 있다. 물이 들어오면 배가 나갈 수 있고 물이 빠지면 배가 나갈 수가 없다. 삶이란 한 편의 소설은 좋은 실과 나쁜 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가는 옷이기도 하다. 항상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없다.
이곳은 항구이기는 한데 항구 같다기보다는 물이 들어오고 나감에 있어서 작은 배를 띄울 수 있는 곳이다. 저 멀리 있는 섬에는 걸어서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까 보았던 송림마을에서 벗어나서 갯벌의 끝자락에서 그곳을 바라보았다. 글의 처음에서 보았던 그 풍경이 상상되는가. 성그레고리우스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모라는 말을 했다. 내일의 내모습을 만드는 것은 바로 오늘의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