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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0. 2022

계룡의 무학대사

계절의 균형을 찾아가는 위한 계룡의 괴목정

조선이 건국되던 시기 고려말의 혼동은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동시대에 유럽은 사랑과 은총 대신 기독교는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억압과 살육의 시기였다. 중세시대의 또 다른 별명이 암흑시대라고 불리 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신의 이름을 내세워서 사람다움이 아닌 폭력과 살상으로 사람이라는 존재를 희석시켰다. 이때 빛을 가져오는 서막이 바로 르네상스 운동이다. 르네상스는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데 바로 신과 그것의 본성을 다룬 신학 대신 인간다움과 그것을 숙고한 인문학이 등장했다. 

이곳은 계룡과 공주시의 경계선에 자리한 계룡시 괴목정 공원이다. 괴목이라는 이름에서 알듯이 이곳에는 다른 나무도 많지만 느티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오래전에는 마을이 있었던 이곳에는 조선을 건국할 때 큰 역할을 했던 무학대사가 지나갔던 곳이기도 하다.  태조가 신도안을 도읍지로 정하고 주변 형세를 살필 때 무학대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지팡이를 무심코 꽂아 놓은 것이 나무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 큰 괴목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무궁화가 많아서 무궁화 학습원이기도 한 괴목정은 나무가 크고 넓게 퍼져 있어 정자 역할을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8세에 출가하여 1353년에 원(元)에 가서 인도의 승려 지공(指空,?~1363)과 고려의 승려 나옹(懶翁, 1320~1376)의 가르침을 받고, 1356년에 귀국한 무학 자초(無學自超, 1327~1405)는 조선 최초이자 최후 왕사이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유학의 해석이 아니라 본래의 유학은 단정하고 행동에 거침이 없는 올바른 학문이지만 끊고 맺음이 너무 명확하다. 그렇기에 무학은 불교 같은 인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상벌로 지도해야 할 사람이 있고, 인과법으로 지도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유교와 불교가 모두 필요하다고 했다. 채찍과 당근은 균형을 맞추어주는 의미가 있다.  

계룡시 신도안면 용동리에 있는 유서 깊은 공원인 괴목정은 옛날에는 사람 많은 곳을 피해온 사람들이 이 근처에 자리 잡고 살았다 한다. 신선객 이야기를 하다가 나무를 골라서 심곤 하였는데 되는대로 땅에 꽂은 나무는 모두가 괴목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그늘이 만들어주는 나무들이 참 많다. 르네상스 운동의 인문학적인 감성이라는 것은 타자의 표현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에 있다. 

괴목정 공원의 한가운데에는 괴목정 숲 속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무엇하나 소흘함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삶의 중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동시대에 전혀 다른 공간에 암흑시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세상을 공부하는 묘미이기도 하다.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주변이 어둡고 갈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항상 그렇지가 않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다시 비추어지게 된다. 암흑을 맞이했던 유럽에서 한 줄기 빛처럼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의 르네상스를 기반으로 한 인문학이 등장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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