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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4. 2016

고산자, 대동여지도

지도를 다시 그린다면

한 번이라도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조선전 도중 가장 대형 크기로 제작되었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철종 때 초간본이 제작되고 고종 때 재간 본이 발행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팩트이고 영화는  재미를 위해 마주치지도 않았을 대원군과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등을 연결했다. 소설 고산자는 픽션에 가깝다. 당시 지도가 상당히 중요했을 것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김정호가 민주화를 꿈꾸었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빈약해 보인다.


지금은 누구나 위성사진(상세한 이미지는 아니지만)에 접근할 수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적지 않은 비용을 내야 위성사진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정보가 공유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정보는 기득권의 손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을 준비하기 위해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조선의 지리를 파악하고 다녔다. 그러부터 300여 년이 지난 조선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가장 정밀한 지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도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거나 지리학을 제대로 연구할만한 머리가 있는 인재가 그렇게 없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마치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처럼 지도가 절대권력의 핵심(글쎄 그렇게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처럼 생각처럼 시대에 조선의 진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닌 김정호를 두고 당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던 흥선대원군과 안동 김씨의 줄다리기를 그리고 있다. 나라가 독점한 지도(영화에서는 무척이나 대충 그려서 별로 쓸모도 없어 보이는)를 백성들과 나누기 위해 와이프와 딸조차 버리고 전국을 유랑한다. 

픽션이기는 하지만 설정만 그럴듯하고 디테일은 너무나 식상하다. 집안을 버리다시피 하고 돌아다닌 덕분에 나이 많은 바우와 김정호의 딸 순실과의 러브스토리나 흥선대원군과 안동 김씨의 대결구도 등을 풀어내는 것이 어설프기만 하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를 원하는 백성이었지만 초기에 홍경래의 난 때 엉망인 지도 때문에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한 백성들을 좀 무리하게 끄집어낸 것외에 딱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극적인 설정을 위해 김정호의 딸인 순실을 천주쟁이로 만들어서 안타까운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조선 전역을 돌아다니는 보부상(부보상이라도 하는)들은 김정호의 지도가 없어도 조선 전역을 아주 잘 돌아다녔다. 조선의 백성들은 각종 부역 및 공납제 도로 인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은 나라였다.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필요하지 않은 지도가 민주화의 상징이 될 수 있었을까. 

나라의 전유물로 여겨졌다는 지도를 백성들에게 공유했다는 것 하나로 김정호를 민주화의 투사처럼 그린 것은 오버한 느낌이 강했다. 대원군을 연기한 유준상이나 김정호를 연기한 차승원 모두 연기가 겉으로 도는 느낌만 들었다. 연출의 한계처럼 보였는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대척점에 김정호가 있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고 대원군이 제대로 집권도 하기 전에 지도는 이미 세상에 나온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원군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은 없었다. 


대동여지도의 주인공 김정호의 삶과 지도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영상미를 중심으로 그렸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쉽게 가려다가 영화 전체를 말아먹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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