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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8. 2022

처(妻)

홍성에 잠들어 있는 성삼문 부인의 묘 

태어나는 것을 결정할 수 없듯이 성별도 결정할 수는 없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성별이 결정되고 사회가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제도에 의해 그 역할이 규정되기도 한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사전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이런저런 역할을 하며 상대방에게는 이렇게 해주어야 되지 않을까란 지멋대로의 잣대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똑똑한 남자와 가세가 좋은 여자의 집안이 결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알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묘를 찾아가 보았지만 대부분 남성의 묘였다. 이번에는 여성의 묘를 찾아가 보았다. 바로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사육신으로 알려진 성삼문 부인의 묘다. 성삼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노은리에서 닭제산을 넘어 다니던 고개는, 당산고개·은골고개·남산고개 등이었다. 노은리는 성삼문 선생이 태어나기 102년 전에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과 부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체 운명을 지고 살아간다. 즉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반드시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행동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남자가 되었던 여자가 되었든 간에 자신의 행동은 그냥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성삼문이 수양대군이 그런 결정을 했을 때 반대를 했던 그 길에서 성삼문 부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그 결정에서 부인은 그 결정이 옳았다고 이야기했을까. 그 기록은 거의 없어서 알 수는 없다. 우리는 성삼문을 기억하지 성삼문 부인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비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 성삼문처지묘라고 쓰여 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성삼문은 사지가 찢겨 전국의 어딘가로 갔으니 말이다.  김시습이 사육신의 시신을 모아 따로 묻었지만 성삼문의 시신중 일부는 바로 논산에 자리하고 있다

성삼문의 흔적과 그의 아버지 성승장군의 묘, 성삼문 부인의 묘를 감싸고 있는 닭제산은 해발 160여 미터 정도의 낮은 산이지만 유명한 봉우리가 세 개가 있다. 닭제봉의 위치가 매우 위태로운 모습이지만, 오히려 양쪽에서 매와 수리가 지켜주므로 안전하게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지형이라고 한다. 힘의 균형은 이루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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