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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3. 2022

산류천석 山溜穿石

이동녕 생가지에서 그려지는 산류천석 문화제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꾸준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매일매일 하기가 어려운 것들이 있다.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꾸준하게 하는 데에는 중간중간의 결과가 만족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음이 필요하다. 결심을 했어도 오래 못가는 것은 자신에게 습관으로 자리잡지 않았음에 있고 습관이 되지 않은 것은 빠른 결과를 보고 싶은 마음에 천착됨에 있다.  산(山)을 아무런 힘이 없을 것 같은 류(溜)로 돌(石)을 뚫기(穿) 위해서는 끊임없이 오래 함에 있다.

천안에는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초대의장이었던 이동녕 선생 생가가 있다. 오는 9월 30일에는 그를 기리는 산류천석 문화제로 산류천석 그래 석오처럼 이 열리게 된다. 생생문화재 사업의 일환이다.

이동녕 선생 생가의 옆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우리는 오래되고 큰 것에 집중하지만 모든 나무도 작은 묘목에서 시작을 했다. 보통 사람들은 결과에만 집중한다. 과정은 보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동녕 선생은 몸소 꾸준히 한다는 의미의 산류천석을 실천했다고 한다.

천안시는 충남 문화유산 콘텐츠 협동조합과 이동녕 선생 관련 문화재 사업을 꾸준히 추진했는데 3년 연속 생생문화재 사업을 추진했으며 모든 행사와 공연은 천안시 공식 계정 유튜브로 생중계하며 시민들이 원격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왔다.

1869년 10월 6일(음력, 9월 2일) 충남 천안군(天安郡) 목천면(木川面) 동리(東里)에서 아버지 이병옥(李炳鋈)과 어머니 광주안씨(廣州安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한 이동녕선생은  유관순 열사와 함께 천안을 상징하는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主席)이 되어 약화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기도 했던 그는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네 번째 주석(1939∼1940)이 되어 김구와 합심해 전시 내각을 구성하였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을 끝없이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숙명, 운명, 사명, 천명, 수명의 삶을 이어가면서 살아간다.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결정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정해진 것도 있고 정해지지 않은 것도 있다. 분명한 것은 긴 흐름에서 방향이 한 번 정해지면 쉽게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동녕 생가지의 뒤편은 왜가리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이동녕 선생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배를 스스로 노를 저어가면서 살며 목숨 걸고 해야 독립운동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해온 일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었다는 천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하늘이 정한 하늘의 시간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숙명, 운명, 사명, 천명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은 하늘의 축복 속에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그 단계를 거치면 산류천석처럼 작은 일이 꾸준히 계속되면 큰 바위를 뚫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삶에는 깃들어 있는 것이 있지만 흐르는 것은 자신이 바꿀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삶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부여받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그냥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방향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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