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허수아비

하동 동정호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모습들

허수아비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사람들에게 허수아비는 무언가 비어 있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주로 곡식을 축내는 새나 짐승 따위를 막으려고 막대기와 짚 등으로 사람 모양을 만들어 논밭에 세우는 물건이 허수아비인데 허수아비의 형상 가운데 원형에 가까운 것은 장대를 가진 사람의 모양이다. 밥은 먹고살지만 논에 가서 그 풍경을 자주 만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흔하게 보던 풍경이지만 다른 모습들이 들어오면서 색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하동의 아름다운 동정호에는 허수아비가 공간을 채우기도 한다. 사람의 모습을 닮은 허수아비는 살아 있지 않지만 사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큰 밀짚모자를 씌웠으며 늘 헌 옷으로 허수아비를 꾸미기 때문에 항상 옷차림이 남루한 거지 모습을 하게 된다. 콩쥐팥쥐의 이야기가 있듯이 계모의 이야기는 보통 안 좋게 그려지기도 한다. 허수아비가 전래된 이야기로 계모의 학대로 집을 쫓겨나 남의 집에서 머슴 노릇 하는 불쌍한 아들 허수를 찾아다니다가 거지가 된 허수 아버지가 아들이 새 보는 논둑에 쓰러져 죽었는데, 새들이 허수의 아버지를 보고 날아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 허수아비를 논에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멀리서 보면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새를 천상과 지상을 이어 주는 신령한 존재나, 씨앗을 가져다주는 곡모신(穀母神)으로 믿던 고대에는 허수아비가 그런 이미지이기도 했다.

다양한 모습과 옷을 장착하고 표정도 그려져 있는 허수아비는 기존의 허수아비와 달리 두 다리와 그렇게 허름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올해 악양면 평사리 들판에 위치하는 동정호가 경남도가 지정하는 2022년 도(道) 대표 우수습지로 지정되었다. 습지보호지역 미지정 습지 중 생태적으로 보전 가치가 있는 습지를 대상으로 2019년부터 지정되고 있으며, 2019년 합천 정양늪, 2020년 함안 질날늪, 2021년 창원 주남저수지, 거제 산촌 습지에 이어 2022년 함안 뜬늪, 하동 동정호가 지정되었다고 한다.

동정호는 2020년 두꺼비 생태이동통로·생태산책로·두꺼비 탐방로 등이 포함된 연면적 1만 96m² 규모의 생태습지원이다.

배를 타고 건너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잔잔한 물이 항상 위에 있는 자연의 모습을 물에 담아서 보여주고 있다.

하동 동정호에서 진행되었던 ‘모두의 습지’는 자원봉사자의 주도적인 습지 보존 활동을 통해 습지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이해를 돕고 탄소저감에 기여하고자 경남 도자원 봉사센터, 경남 람사르환경재단과 함께하는 2022 경남 안녕 캠페인이라고 한다.

하늘은 흐리지만 계단은 열려 있다. 위로 걸어서 올라가면 조금은 동정호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묘한 전체 구조를 이루는 것을 프랙털이라고 한다. 같은 형태의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면서도 일정한 형태를 만드는 프랙털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닮은 구조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다채롭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단순해진다. 사람도 자연도 그렇게 다가가면 순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을, 감성을 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