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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감성을 팔다.

멸종위기식물이 있는 서식지외 보전기관의 고운식물원

올려놓았는데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다시 올려두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일상이 어떻게 보면 그렇게 똑같은 일들을 반복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의 책 '시지프스 신화'에서는 인간에 대한 철학을 그렸다. 그 책에서는 시시포스가 정상에 도착하면 굴러 떨어지는 돌을 다시 정상에 올려놓아야 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인간을 이야기한다. 그 세계에서는 시시포스가 형벌을 내린 신에게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형벌을 즐기는 것뿐이 없다.

어떤 공간을 연상할 때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가을에 여행하기 좋은 제주도라고 하면 돌하르방이 떠올려진다. 그리고 탁 트인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꽃들과 마음처럼 푸르른 풍경이 아닐까. 이곳은 청양에 자리한 고운 식물원이라는 곳으로 환경부의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멸종식물이 보전되는 곳이다.

매년 찾아오는 가을은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삶을 영위하는 인간은 달라질 것 없는 내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새로워질 것도 없다. 인간이 문화를 즐기고 여행을 다니며 글을 읽는 것은 매일매일이 똑같지만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채의 꽃은 겨울이 오기 전에 화사함을 간직하고 있다. 가을이라고 하면 찾아오게 될 겨울의 무채색을 잠시 잊게 만들어 주는 계절이다. 지금 청양의 고운 식물원은 고운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곱디 고운 꽃들이 곳곳을 채우고 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시시포스는 어느 날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을 납치하는 것을 목격하고 아소포스에게 이를 알렸는데 이 사실을 안 제우스는 매우 분노하여 죽음의 신을 시시포스에게 보냈다고 한다. 자신을 데리러 온 죽음의 신을 묶어버렸고 전쟁의 신 아레스가 죽음의 신을 구출해줄 때까지 세상에는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청양 고운 식물원의 곳곳에는 구절초가 아무렇지 않게 피어 있다. 고운식물원처럼 지정된 서식지외 보전기관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야생생물의 서식지외 보전을 통한 생물다양성 증진 및 사람과 야생생물이 공존하는 건전한 자연환경 확보가 목적이다. 생물다양성 증진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우리는 사라져 간 동물이나 식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사람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거대한 젠가라는 게임에서 블록을 하나씩 뺀다고 생각하면 된다. 수십 개, 수백 개를 빼도 쓰려지지는 않지만 임계점을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고운 식물원을 오면 마치 시시포스처럼 항상 똑같은 길로 걸어서 올라간다. 다행인 것은 필자의 앞에는 거대한 바위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어떤 식물들이 있는가 살펴본다. 멸종위기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런 공간들도 필요하다. 그래서 서식지외보전기관을 지정한다. 지정 기준은 동물원·식물원 및 수족관, 국·공립연구기관, 기타 환경부장관이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기관에서 신청할 수 있다.

데크길이 끝나가며 다시 산길로 이어진다. 겨울에도 한 번 와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봄, 여름, 가을에 오는 것이 볼 것도 많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이곳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고추들이 전시가 되어 있다. 고추의 종류도 엄청나게 많은데 세계 기후에 맞는 고추들은 그 지역의 음식문화와도 연관이 되어 있다.

화사한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쁘고 아름다운 꽃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잘 키운다. 그래서 식물들의 다양성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쁜 꽃들만 좋아하고 키우고 어디서도 볼 수 있으니 눈에 뜨이지 않는 멸종위기 식물들은 어떻게 될까.



공간은 구분이 되어 있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자연스럽게 산책하면서 감상을 하면 된다. 고운 식물원의 상설전시장에서는 새우란, 일본철쭉, 수국, 분재, 토란, 양란, 미니비비추 등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없어도 일하시는 분들은 곳곳에서 다양한 식물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서식지외 보전과 멸종위기식물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정 대상종(증식기술 연구, 증식분야 경험), 시설(생물 사육·증식시설, 관리·운영시설 등), 보유인력(관련 전공 및 종사자) 등을 평가해서 지정한다.

곳곳에는 어떤 조각상과 조형물을 놓을지에 대해 생각을 할 것이다. 뼈대가 훤히 보이는 저 피아노를 형상화한 조형물에서는 어떤 음악이 흘러나올까. 영롱한 마음이 편한 음악소리가 연주되지 않을까.

이곳에서는 다양한 다알리아라는 꽃을 볼 수 있다. 꽃색은 빨강, 노랑, 분홍 등 밝은 색이 대부분인 다알리아는 꽃이 공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국화과의 알뿌리식물로 뿌리가 고구마를 닮은 다알리아의 꽃 모양은 홑꽃형, 아네모네형, 폼폰형 등 7-8가지가 있어 매우 다양하다.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가슴앞에서 합장을 한 여인이 가을의 감성을 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따로 비용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날 하루도 돌을 밀고 올라갔던 그 마음의 묵직함을 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매일매일 그렇게 누군가는 그 짐을 조금씩 덜어준다고 생각한다면 말이 없는 저 여인은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바위는 누가 밀어서 떨어트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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