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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2. 2022

사람의 그릇

삼가고 삼가고 삼갈 수 있는 사람만이 리더

이미지를 보니 다시 첫 번째 허들이라는 다이빙에서의 백 입수를 시도했을 때의 필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보이지도 않고 측정되지도 않는 물로 들어갈 때의 두려움이 상당하다. 그나마 두 번째에서는 등과 목으로 온전히 물과 부딪쳐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상황에서의 입수는 몸의 준비가 가능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환경에서는 몸이 제멋대로 떨어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몸이 제대로 떨어지기 위해서는 정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운동한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의 말과 행동이 그렇다. 충분히 삼가고 삼가고 삼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본질은 아주 쉽게 드러난다. 최근에 대한민국의 수장이라는 사람의 말에서 그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필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말은 쉽지만 가볍지 않고 상대방이 오해할만한 말은 아예 하지 않아야 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자신을 갈마 무리하더라도 어느 순간에 사람은 정신이 해이해진다. 그럴 때 문제가 발생한다. 


OECD에 속해 있는 선진국들에서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과하게 하지도 않고 적게 미치지도 않는다는 의미다. 자신이 내뱉는 말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항상 필터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담이나 장난은 확실하게 그 의미를 전달하면 될 뿐이다. 문제는 농담이나 장난이 아닌데 진지하게 느껴지게끔 하는 말들이다. 누가 들어도 저건 적당한 수준의 농담도 받아들이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문제를 만들어낸다.  


한국사람들은 항상 말에서 실수를 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 샌다는 말은 정확하게 맞다. 자신이 그만큼 성숙하지 않았지만 꾸밀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 꾸민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난다. 정말 친한 친구끼리 이야기하면서 아주 쉽게 욕을 일삼는 것이 한국사람이다. 욕을 해도 받아들일 만큼 친한 사이라는 것을 서로 인증하려고 하는데 굳이 그런 언행을 할 필요가 있을까. 사적인 자리에서 했던 그런 행동은 공적인 공간에서 평소에는 나오지 않지만 스스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순간에 폭발한다. 


욕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대화가 될 수 있을 만큼 표현의 기법은 너무나 많다. 그 기법이 부족하면 책을 좀 읽자. 업무를 위한 책이 아니라 상식과 품격을 위한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사람의 그릇은 힘들다고 하는 시험을 통과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건 기능적인 것이다. 기능적인 것은 사람을 성장시키지 못한다. 기능적인 것을 채우고 나서 다른 것을 채워야 성숙해지는 것이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 엘리트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사람들이 그런 자격이 없는데 왜 스스로를 그렇게 칭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무지한 것을 숨기려고 하는 듯하다. 자신의 전문분야 외에 다른 분야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억지로 국민을 속이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 20년대 중반까지 참 힘들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틀리지 않을 것 같아 갑~갑하다. 사람이 온전해질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내뱉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이 스스로 알 때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모르기에 실수를 반복한다. 


대통령실 수석대변인이 변명한 것처럼 대상이 세계 언론이 실시간으로 중개하는 방송에서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의 야당을 향해 '이새끼'라고 한 것이니 어떻게든 바이든이 쪽팔리게 해줘야 한다면 어쩔수 없다. 민주당이 무슨수를 쓰던지간에  바이든 대통령을 쪽팔리게 해줘야 한다. 그게 국익이니까. 그런데 왜 그래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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