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Sep 28. 2022

블랙 아담

선과 악은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할까. 

점점 선과 악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상황과 시기에 놓이느냐에 따라 선과 악은 달라질 수 있다. 만약 개인을 도덕화 된 범주에 가두는 유토피아적 신념이 강력한 체재에 뿌리내리면, 그야말로 최대의 파괴력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아랍국가에서 여성이 히잡을 쓰게 한 것은 여성을 보호하다는 유토피아적 신념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여자를 옥죄는 제도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유해한 공리주의의 계산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한다. 사고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은 경우와 적은 사람이 죽은 경우에 적은 수의 경우에는 좀 더 쉽게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선과 악이 모호해진다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옛날처럼 선과 악을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구분할 수 없다. 이제 곧 개봉하게 될 영화 블랙 아담이 그런 캐릭터다. 빌런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한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서는 희생도 아무렇지 않게 치르게 만든다. 5000년 전 고대 도시 ‘칸다크’의 노예에서 슈퍼맨과 같은 힘을 가진 블랙 아담은 슈(SHU)의 체력, 헤르세프(HERSHEF)의 힘, 아몬(AMON)의 권능, 제후티(ZEHUTI)의 지혜, 안푸(ANPU)의 스피드, 메헨(MENTHU)의 용기를 가졌다. 

막강한 그를 막기 위해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가 나선다. 마법을 사용하는 닥터 페이트, N번째 금속 날개로 날아다니는 힘을 가진 호크맨, 바람을 조절하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사이클론, 분자 구조를 제어하고 그의 크기와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아톰 스매셔가 나서지만 블랙 아담에는 역부족이다. 블랙 아담의 가장 큰 에너지는 바로 분노다. 

종교가 지금까지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조그만 찾아봐도 차고 넘친다. 지금은 자본주의에 완전하게 물든 종교들은 옳고 그름은 오로지 그들에게만 적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선과 악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준과 다르다. 공산주의의 토대가 된 마르크스주의 종말론은 사실 기독교 교리의 모방에서 시작이 되었다. 이들은 기념비적인 나르시시즘과 때론 무자비함도 허용될 수 있다고 본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만으로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DC는 매력적인 새 빌런, 새 히어로 발굴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절대선과 절대 악 혹은 희생 없이 구해낼 수 있는 위기도 없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지만 더 균형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때다. 한쪽만이 옳고 다른 쪽은 항상 틀리지도 않다. 지금은 맞다고 말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틀릴 수도 있다. 선과 악이 더 모호해질수록 궤변으로 누군가를 억압하려는 사람들과 조직이 더 늘어날 수가 있다. 그걸 보려는 눈이 줄어들수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릿 트레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