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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5. 2022

뿌리 깊은 존재

태교여행지로 자리잡은 성주의 세종대왕자 태실

자식과 부모는 뿌리로 이어지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전혀 별개의 존재이기도 하다. 부모의 유전자를 받았지만 걸어가는 길은 이미 임신을 할 때부터 다르다. 같은 부모에서 나온 자식이 같은 성향을 가지지 않는다. 때론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성향을 가진 형제와 자매의 모습을 볼 때도 있다. 하나의 뿌리를 두고 나무의 몸통에서 나온 가지는 각기의 모습으로 뻗어나간다. 

성주시에는 조선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태실이 있는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왕조의 역사를 단절시키기 위해 전국에 있는 태실을 모두 경기도 고양시의 서삼릉으로 대부분 옮겼다. 일제가 서삼릉으로 옮긴 이유는 관리하기 편하기 위해서였는데 왕들이 태어났을 때 태실지를 정한 것은 풍수지리적으로 정한 것이지 관리하기 편해서가 아니었다. 

뿌리에서 올라온 물과 양분은 가지에 달려 있는 나뭇잎까지 이르게 된다. 계절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물과 양분을 닫기에 색이 변하면서 단풍을 만들게 된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가을여행의 낭만적인 모습일 수 있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내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에게 있는 힘을 말할 때 인간의 품위를 의미했다. 군자는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 않아야 한 것이며 내면의 힘이 없으면 인간은 품위가 없고 행동이 경박하게 된다. 성주의 생명문화공원에 자리한 이 나무는 그 위세가 남달라 보인다. 휘어 감듯이 나무의 가지가 사방에 자신의 모습을 뽐내는 듯하다. 

자연은 미래를 아는 것을 금기시키는 것만 같다. 미래가 전개되는 방식은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뜻에 의해서 전개가 된다. 뜻을 안다는 것은 그것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주역 원전에는 아래와 같은 표현이 나온다. 


"주역에는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는데, 팔괘는 길흉을 정한다." 

이제 성주의 세종대왕자 태실을 보기 위해 걸어서 올라가야 할 시간이다. 태실이라 함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씻어서 태항아리에 담아 봉안한 곳을 말한다. 명당인 이곳의 태봉까지 태를 옮겨 태실을 조성한 것은 태어난 아기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동시에 왕실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세종 20년 (1438)에서 세종 24년(1442)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세종의 아들 18명과 손자인 단종을 합쳐 모두 19기의 태실이 모여 있다. 전국에 있는 태실 중에 이렇게 많은 수의 태실이 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다.  

이곳에 와서 태실의 모양을 보면 그 당시의 역사와 수양대군과 그의 형제의 운명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조가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면서 이에 반대했던 안평대군이나 금성대군은 태실의 조형물이 없어졌다. 

조선의 역사 속에서 많은 자식을 낳은 왕들이 있지만 그 기세가 남다른 왕자들이 가장 많았던 왕은 세종이 아닐까. 조선왕조를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할아버지 태종의 손자들은 그의 기세를 닮았다. 

19기의 태실은 화강암으로 깎은 조선 태실 의궤(儀軌) 형식으로 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백자로 된 태호(胎壺)를 넣는 형태이다. 이곳에는 문종(文宗, 推定)·세조(世祖)·안평대군(安平大君)·임영대군(臨瀛大君)·광평대군(廣平大君)·금성대군(錦城大君, 추정 1977년 보수 시 지석 출토)·평원대군(平原大君)·영응대군(永膺大君)·원손(元孫, 1441, 端宗으로 추정, 1977년 보수시 지석 및 분청상감연화문개 출토)·화의군(和義君, 추정)·계양군(桂陽君)·의창군(義昌君 추정, 1977년 보수시 분청상감연화문개, 분청사기대접, 토기태항, 지석 출토)·한남군(漢南君)·밀성군(密城君)·수춘군(壽春君)·익현군(翼峴君)·장(璋)·거(乫)·당(瑭) 등이 있다.

형제자매가 있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가 다르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은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받침돌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은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왕이 되었다고 해서 반대한 왕자들 태실은 파괴하고 자신의 태실만 잘 꾸며놓다니 조금은 치사한듯한 느낌이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뿌리 깊은 존재가 되면 앞서서 말한 것처럼 고귀함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영화 보스 베이비처럼 그런 세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어나는 것은 선택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어릴 때의 꿈이 재벌 2세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도 꿈을 꾸고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다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꿈을 이루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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