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재

유배였지만 따사로운 햇볕 속에 머무르고 싶었던 공간

2백 년도 지난 시간 이곳은 강진현이었다. 가을이 무르익은 만추였지만 한낮의 햇볕이 제법 팔소매를 걷어붙이게 할 만큼 따사로웠다. 그렇지만 다산 정약용은 마음은 허전했다. 그는 정조의 사후에 강진으로 유배를 왔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세상을 다르게 느끼게도 한다. 세상도 변하고 민심도 변했으며 영원한 것은 없었다.

200년의 시간전에 시대가 바뀌었고 임금도 바뀌었다. 임금은 시대가 바뀐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순조가 즉위하고 정순대비는 사교와 서교를 엄금하고 근절하였다. 이 땅에 자리잡기 시작한 천주교는 종교의 관점이 아니라 성리학적 지배 원리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흐름이었다. 바꾸고 싶지 않았던 시간인 정조 사후에 100여 명이 처형되고 400명이 유배길에 오르는 신유사옥때 정약용도 이곳에 내려오게 된다.

강진이라는 곳에 와서 보니 사의재라는 건물이 있었다. 정약용은 이곳에서 4년을 기거했다고 한다. 외로웠던 정약용은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이곳에 머무를 수 있었다. 사의재의 뜻은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의미다. 세가지는 알아도 네가지는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이곳을 방문해봐도 좋다.

네 가지가 무엇일까. 우선 안으로 들어가보니 그 시대로 돌아온 것만 같다. 생각과 용모, 언어와 행동은 정약용이 바로 하도록 자신이 경계하던 것으로 부지런함이란 마음가짐이 굳건함을 의미한 것이었다.

사람이 생각이 맑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을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하는 것이 정약용이 추구하는 것이었다. 말은 하는 것보다 많이 들을 때 자신의 무게감이 더 큰 법이다. 자~ 사의 재속으로 들어가 본다. 주막에 먼저 가서 막걸리라도 한 병 마시고 싶었지만 잠시 참아본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곳이 사의재라는 곳의 중심이다. 가운데 물이 흘러나오는 길이 있고 고목이 한그루 중앙에 서 있다. 강진읍은 와우형국인데 동문 마을에는 소의 왼쪽 눈을 뜻하는 샘이 있는데 동문샘은 마을 안에 있는 샘이다.

세상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정약용은 자신이 배운 학문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무지한 백성은 더 이상 깨우치게 할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정약용에게 주막 할머니는 실천하는 삶을 보여주었다. 저 돌다리를 건너가 봐야 저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럼 돌다리를 건너가 볼까.

돌다리를 건너서 안으로 와보니 주막이 있지 않은가. 막걸리를 마셔볼 수 있는 곳이다. 노파는 정약용에게 아버지는 대를 이을 자식의 씨앗이며, 어머니는 그 씨앗을 길러 내는 흙과 같으며 밤톨은 밤이 되고 벼의 씨앗은 벼가 되듯이 그 몸을 온전히 이뤄내는 것은 토양의 기운이기는 하지만 끝내는 같은 동아리로 나뉘는 것은 모두 종자에서 연유한다고 했다.

자식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이냐는 부모가 모두 그 근본을 갖추었을 때 알 수 있다. 씨앗과 흙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노파와의 인연을 통해 세상과 닫힌 문을 열었고 다산은 자신이 추구해야 할 학문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은 한옥 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하루를 묵으면서 노파의 현명함을 생각할 수 있는 곳이다. 묵직해야 할 동작에 대해서 생각해볼까. 추사 김정희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사람보다 시를 잘 짓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황상이라는 사람으로 강진에서 다산 정약용을 스승으로 삼았다.

세상은 항상 변한다. 어제는 옳았던 것이 오늘은 틀린 것이 될 수가 있다. 다산 정약용은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항상 유연하게 세태에 맞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살기 위해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닌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정말 소중한 인연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자신이 변하지 않았는데 어떤 좋은 사람이 찾아올까.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조선을 만나보는 시간이었으며 정약용과 함께 걸어본 시간이기도 했다. 그대의 마음은 어디에 머물렀는가.


#강진관광에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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