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露梁)

7년간의 전쟁을 끝낸 하동의 바다

남해 바다가 유독 진하게 보이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바다에도 길이 있다. 그 길에는 삶도 있고 죽음도 있다. 수많은 배들이 떠 있는 것이 보이는 하동의 겨울바다는 유독 더 차갑고 진하고 깊숙해 보였다. 하동군 금남면과 남해군 설천면 사이를 잇는 나루터로 발달한 곳의 이름은 노량이다. 량(梁)은 바다와 바다, 강과 강, 바다와 강 사이의 좁은 해협을 의미한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바다의 지름길이 노량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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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 매일매일 일기를 쓰며 비어 있는 공간을 빼곡히 채워나갔지만 그 일기도 11월 17일이 마지막이 될지는 몰랐다. 왜군의 배 1척이 남해에서 바다로 건너는 것을 한산도까지 추격했다는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노량의 바다가 죽음의 바다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11월의 노량은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딱 좋은 느낌을 주는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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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이 있는 곳은 수시로 여객선이 드나들고 크고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무얼 먹을지 고민이 된다면 하동 참숭어를 추천해본다. 하동 녹차 참숭어는 섬진강 하구 노량해협의 거센 조류에서 녹차 사료를 먹고 자라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파진다. 하동 참숭어를 넣은 회덮밥으로 식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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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머물렀던 이순신의 시간도 11월이었다. 1598년 무술년의 11월은 노량해전으로 인해 이순신이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11월 19일에 노량해전이 있었고 이순신은 17일까지 일기를 썼다. 잠깐 이순신 생각은 뒤로하고 참숭어를 넣은 회덮밥을 먹어야겠다. 회덮밥은 생각한 대로 술술 잘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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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덮밥을 한 그릇을 하고 나와서 보니 노량이 더 풍요로워 보인다. 역시 배는 채워야 맛이고 바다는 보아야 맛이다. 바다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이곳에 진을 치고 왜군을 쫓아갔던 이순신에게 머물러본다. 왜군은 최대한 피해 없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명나라의 도독인 진린에게 은 100냥과 보검 50구까지 바쳤으나 이순신은 개의치 않았다. 왜군이 무사히 이 노량을 빠져나가게 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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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리는 하동군 금남면의 지명이기도 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하동의 노량마을이 있는데 가볍게 숙박을 할 수 있는 곳과 함께 회와 같은 먹거리가 있다.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가을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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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과 남해군을 연결하는 이 현수교는 총연장 3.1km의 세계 최초의 경사 주탑 현수교이다. 9년 간의 공사 끝에 2018년 9월 13일 완공, 개통되었는데 처음에는 제2의 남해대교라고 불렀다가 다시 노량대교로 확정이 되었다. 보이는 다리의 주탑의 경사는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의 승전을 의미하며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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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을 보면 바다가 격랑 하는 듯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필자는 그 분위기가 마치 바다를 보는 것만 같다. 끊임없이 에너지를 가지고 돌고 도는 바다의 모습이 그렇게 그려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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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바다를 가득 채운 태양의 노을이 노량대교의 주탑을 통해 올라오는 것만 같아 보인다. 다리의 디자인은 이순신 장군의 전술 '학익진'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지자체의 지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 때문에 남해군은 남해대교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지만 결국 노량대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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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대교를 내려다보기 위해 전망대로 걸어서 올라가 본다. 생각보다 계단수가 많은 편이다. 이순신은 매일같이 높은 곳에 올라서서 전술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를 무척이나 아꼈던 유성룡은 몸을 아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순신은 항상 몸소 앞에 나섰다. 전망대에 있는 초승달의 조형물처럼 어디서든 언제든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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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가는 해를 잡아보려고 하지만 한 번 넘어가기 시작하면 해는 더 빠르게 바다 너머로 사라진다. 저 멀리 있는 섬들이 마치 학익진을 만들고 있는 배들처럼 보인다. 그날도 그렇게 배들이 바다를 메우고 있었을 것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투 막바지에 11월 19일 총탄을 맞고 저물어가는 해처럼 스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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