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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2. 2022

면천 일기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풍경 속에 풍성한 감성

1780년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났던 남자가 있었다. 청나라에서 온 사신을 따라 열하라는 곳에 다녀왔는데 그는 정부의 관리가 아니었기에 자유롭게 돌아다녀볼 수 있었다. 40대 초반이었던 박지원은 그때 느낀 점을 소상하게 기록하여 26권 10 책으로 썼다. 열하라는 곳은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북쪽으로 230k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숭덕이라는 곳이다.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했던 박지원은 그 경험을 가지고 조선에 돌아오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의도해서 하지 않으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나친 것에는 항상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의 이정표가 있다. 매일매일이 바뀌는 것 같지만 사람의 패턴은 비슷한 가운데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곳은 당진의 면천이라는 지역이다. 면천향교와 면천읍성이 자리한 곳에는 골정지가 있다. 

골정지는 겨울에는 조용한 곳이다. 한 여름에는 연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곳이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지금은 마을 사람들만이 가끔 보일 뿐이다. 열하에 다녀온 박지원은 17년 후인 1797년에 면천군수로 부임하게 된다. 그때의 나이가 환갑이었던 61세였다. 이곳에서 3년을 지내게 된다. 

골정지의 곳곳에는 간단한 문구들이 보인다. 보고 싶다는 문구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 면천군수로 부임을 한 박지원은 오래전에 갔다 왔던 열하를 생각했을까. 이곳에서 면천군수로 부임했을 때 농사 저술과 실학사상을 전파했다. 

누군가의 발자국이 이곳을 지나갔을 때 연암 박지원은 저수지 한가운데 축대를 쌓고 소박한 정자를 지었다. 정자로 가기 위해 돌다리를 놓아서 면천향교의 유생들이 자주 머물고 시를 읊고 학문을 익히게 된다. 

연암 박지원이 만들었다는 정자는 저 가운데에 있는 건곤일초정이다. 지금의 건곤일초정은 그때의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다. 면천군 백성들의 고통받는 삶을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게 도니다. 연꽃으로 가득한 골정지(骨井池)라 불리는 약 9900m²의 연못에 예전처럼 인공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약 33m² 크기의 초정(草亭)을 지은 후 돌다리를 놓았다. 

다리의 규모는 폭이 60㎝, 길이 220㎝, 두께가 40~60㎝ 정도의 화강석을 두 개씩 총 8개를 네 칸으로 직접 걸어서 건너가 보니 튼튼했다. 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이라는 이름은 ‘하늘과 땅 사이의 한 초정’이라는 의미로, 두보의 시 구절에서 차용한 이름이다. 

인공 연못을 만들기 위해 연암 박지원은 고생할 백성들을 위해 술과 음식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연못을 준설하고 도랑물이 이곳으로 흐르도록 만들었다. 이후 연못은 물이 가득 모여 넘실거렸으며 가뭄에는 농사를 짓고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골정지의 겨울은 내년을 준비하며 분주히 땅속과 물속에서 바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 열하라는 곳을 다녀왔던 박지원은 작은 정자이지만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에서 연못에서 핀 연꽃을 감상했을까. 이곳은 옛 부터 향교와 가깝고 주역의 태괘 형상으로 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지나가 보니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을 것이다. 2020년이 시작되는 것 같더니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간 것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낄수록 세상의 기회가 얼마나 다양한지 볼 수가 있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는 사회 제도와 양반 사회의 모순을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을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담았기 때문에 위정자들에게 배척당하다가 1901년에 와서야 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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