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향교 (韓山鄕校)

세상은 맺혔던 것이 풀려나가는 것뿐

주역은 점을 보는 책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학문이기도 하다. 궤 상의 변화를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양이 점점 위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이가 어릴 때에는 아래에 있다가 점점 위로 올라가서 위치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이란 음양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과정이다. 맺혔던 것이 풀여 나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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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이라는 것은 충청남도 서천지역의 옛 지명이다. 한(韓)과 산(山)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은 백제의 마산현(馬山縣)이었을 때와 고려시대에 승격하여 한주(韓州)가 되었을 때였다. 한산이라는 이름이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1413년(태종 13)에 한산군이 되었을 때다. 건지산(乾止山)ㆍ기린산(麒麟山)ㆍ숭정산(崇井山)ㆍ취봉산(鷲峯山) 등에 둘러싸인 이곳의 생김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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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한산면에 자리한 한산향교다. 위치상으로 보면 마을 중심지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한산은 풍요로웠던 지역이다. 금강의 하류에 있어 강변에는 우포(朽浦)ㆍ와포(瓦浦)ㆍ아포(芽浦) 등의 포구와 해창(海倉)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산에는 따라다니는 이름이 있다. 바로 모시다. 게다가 소곡주는 한 번 맛보면 그 맛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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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향교는 1518년(중종 1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한산향교의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 옆면에 바람막이 풍판을 설치했다. 이외의 건물로는 학생들의 기숙사로 쓰이던 동재와 서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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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향교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고목이 두 그루가 서 있다. 고목의 사이로 걸어올라 가면 정문은 닫혀 있지만 좌측으로 올라가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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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은 삶을 의미 있게 하는 절대조건이다. 모든 것을 관찰하고 사물의 뜻을 밝혀나가며 지식을 넓혀왔다. 세상에 관심이 없으면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삶이란 관찰의 의지가 있으 ㄹ때 그 힘이 뻗어 나오고 존재의 의미도 커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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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으로 돌아서 올라오니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한산향교의 대성전은 최근에 다시 지어졌다. 대성전에 모셔진 동국 18현 중 조광조가 있다. 이곳이 지어질 때인 시기의 임금이었던 중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백성의 입장에서 바르고 깨끗한 정치를 하자는 조광조의 급격한 개혁은 중종과 부딪쳐 실패로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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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성인은 세상을 살아갈 때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고 살얼음을 밟듯 하라라고 했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오를 수는 없다. 미래는 확실하게 대비할 수는 없지만 빠른 변화 속에서 흐름은 탈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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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올라가면서 내려갈 것은 생각한다. 한산향교에 올라와서 보니 있을 곳이 있는지를 살펴야 하며 위치가 너무 높다면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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