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시각을 바꾸었을 뿐인데
예의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형식이 아니라 쌍방이 서로 마음을 열고 조화로운 상태가 되는 것을 화라고 하는데 이 상황에서 나누는 대화이야말로 필연적으로 예에 들어맞는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있는 사람은 일관성이 있다.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이 다르지 않는다는 것은 말과 자신의 마음이 일치한다는 의미이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96호로 지정된 원주향교는 1402년(태종 2)에 지어진 교육기관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서재·삼문(三門) 등이 있다. 1422년(세종 4) 목사 신호(申浩)가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이택(李澤)이 대성전을 중건하였다. 1608년 목사 임취정(任就正)이 명륜당과 동재·서재를 복원하고, 1632년(인조 10) 이배원(李培元)이 증축하였다.
향교와 같은 공립기관은 사교육의 문제를 해소시켜 주는 기관이다. 사교육의 역사를 살펴서 올라가면 고려시대까지 올라게 된다.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고려시대에는 국자감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이었다. 그렇지만 고려시대에 문헌공도를 비롯해 12개의 공도 같은 사교육기관이 있었다.
원주향교에 서서 홍살문을 바라보며 교육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교육이라는 것은 결국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일조를 할지에 대해 기초를 배우는 것이 아닐까.
고려를 풍미한 사교육을 보면서 조선중기의 황준량은 이렇게 썼다.
"최충이 문헌공도를 설치하고 후학들을 가르쳐 세상에서 ‘해동부자(海東夫子)’라 일컬었다. 그러나 세상에 적용하여 도(道)를 밝힌 효험이 없었고 자신에 돌이켜 궁구(속속 파고들어 깊이 연구)한 실질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문하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 모두 문장이나 수식하는 경박한 선비들이었습니다. "
원주향교는 현대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원주향교를 오면 주변에 맛있기로 유명한 막국수도 있고 향교의 이름을 그대로 딴 향교칼국수도 있다.
논어에서 유자는 조화의 본질을 돌아보고, 조화되었다고 생각한 일도 실은 부조화가 아니었는지 다시금 생각을 고쳐보는 것으로 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진실과 진리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진실되지만 그것이 진리가 아닐 수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지만 진실이 빠질 수 있듯이 말이다.
향교에서 머물면서 공부했던 사람들은 동재와 서재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한 번 들어오면 합숙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서로의 의견을 가지고 소통했다.
원주향교에서는 지난 1월 ‘계묘(癸卯)년 새해에 만사형통하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설 명절 보내시라’는 뜻을 담은 이번 행사를 통해 각 개인마다 가래떡과 절편떡 한 보따리씩을 배부하며 온정을 전했다고 한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 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노인의 연령기준에 대해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공자는 70세가 되어 이때까지 배운 모든 것을 신체에 통합하고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르는 것이 도라고 느꼈다고 한다.
공자가 기본적으로 가르친 것은 네 가지다. 말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기예의 문, 실천한다는 행, 말과 행동에서는 늘 진심이 따른다는 충,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