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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9. 2022

알을 깨는 일

눈이 내린 날 걸어본 청양의 알품스공원

자연이라는 것은 스스로가 알을 깰 수 있는 존재들에게 기회를 준다. 새들 역시 새끼를 키우기 위해 본능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지만 알을 스스로 깰 수 없는 새끼들이 나올 수 있도록 알을 깨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인간만이 알을 깰 수 없는 자식들에게 알을 깨 주지 않을까. 알을 깰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알을 깨 주고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은 오히려 독약이 될 수 있다. 스스로가 길을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 

청양 장곡사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알품스공원은 포근한 곳이다. 알품스는 만물 생성의 7(七) 대 원소와 최초를 뜻하는 갑(甲) 자로 이루어진 칠갑산 아흔아홉 골을 배경으로 생명의 근원인 알과 그 알을 품은 둥지를 표현한 것이다. 

눈이 내리면 잠시 동안은 모든 것이 덮이고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차를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차가 더러워지지만 적어도 설경이 좋기에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 

위에서 물이 흘러내려오고 있지만 살포시 살얼음이 얼어 있어서 아래는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는 산이 둘러싸여 있는데 크게 본다면 거대한 둥지 같은 느낌이 든다. 둥지 형태로 조성된 슬로프 산책로(200m)는 알 조형물을 중심으로 풀을 뜯고 있는 양 조형물을 주변에 세웠으며, 군 캐릭터 '청양이'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칠갑산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장곡천을 따라 백제체험 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수변 산책로가 있고 봄철 벚꽃과 꽃잔디, 영산홍, 여름철 연꽃과 배롱나무, 가을철 단풍도 볼 수 있다. 설경까지도 푸근한 느낌이 들게끔 한다. 

청양의 관광축은 목재체험관과 자연휴양림을 연계한 칠갑호 지구, 천장호 출렁다리와 연계한 에코 워크, 생태공원의 천장호 지구, 산책로와 미로정원 등을 갖춘 알품스 공원이 조성됐고 백제문화체험관 증축과 어린이 백제 체험관이 있는 장곡지구가 중심축이다.  

둥지 형태로 조성된 슬로프 산책로(200m)는 알 조형물은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모든 길은 저렇게 돌아서 올라가는 것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것 같지만 돌아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알속으로 걸어서 들어가 본다.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사전이 필요하다. 사전에 많은 단어가 있을수록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오해하지 않을 능력이 생긴다. 자신의 알속에 필요한 단어가 없으면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단어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청양의 알품스공원의 알의 조형물 안으로 들어오면 걷는 소리마저 울린다. 내 발걸음이 소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알은 크기가 정해져 있지만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알은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알을 키우는 것은 꾸준한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눈이 내린 지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발자국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발길이 닿지 않은 눈길을 밟고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다. 

알을 깨고 나오는 말들이 있다. 때론 흔들리는 감정을 딱 고정해주거나 감정적 기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이나 글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은 단어 혹은 말, 어떤 마음을 가리키는 단어와 나만 아는 것 같은 좋아하는 그런 말이 항상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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