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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28. 2022

서동의 다리

서동의 전설을 담은 느낌의  서동요 출렁다리 

마를 캐던 아이가 있었다. 당시 백제는 먹을 것이 많지가 않았다. 감자 · 고구마가 없었던 시대에 마는 칡뿌리와 함께 중요한 구황식품이었기 때문에 마는 중요한 식량이었다. 자연스럽게 마를 캐던 아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 시대로 돌아가보면 백제는 모든 것이 혼란하던 시기였다. 한강을 비롯하여 중부를 모두 빼앗기고 내몰리듯이 웅진을 거쳐 부여까지 밀렸던 것이다. 할아버지였던 혜왕이나 아버지였던 법왕은 즉위한 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곳은 부여의 서동요 테마파크가 있는 건너편으로 출렁다리가 자리한 곳이다. 서동(薯 : 마 서, 童 : 아이 동)은 심지가 굳은 아이였을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시기에 그는 마를 캐던 아이라는 설화를 만들어낸 것은 그만큼 백제가 그 시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눈이 내렸지만 서동요 출렁다리가 있는 이곳은 고요하기만 분위기만큼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로 썰을 풀기에 좋아 보인다. 그 소년은 과부의 아들로 백제의 서울 남쪽 연못가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그의 어머니는 용과 잠자리를 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마를 캐서 팔 망정 남자라면 이쁜 여성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백제의 왕이야기보다 아름답다는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가 솔깃한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이 아닐까. 출렁다리의 아래로 내려오니 철새들이 재빨리 물에 그림을 그리면서 날아가고 있었다.  

서동에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를 많이 캐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곳을 다니게 되었고 거기에서 금도 발견한 것이었다. 필자는 서동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를 캐면서 곳곳을 돌아다녔고 그만큼의 노력으로 탁월한 지략을 펼칠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춥지만 이곳까지 왔으니 서동요 출렁다리를 건너가 본다. 나중에 무왕이 된 서동이 도성의 연못 언저리든 마룡지든 어디에서 태어났든 간에 용의 정령(精靈)이 과부의 몸을 빌려서 태어났다는 것은 당시에도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진실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서동의 이야기처럼 사랑이야기와 더불어 마를 캤지만 단순히 그것으로 머물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 


善化公主主隠,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夜矣卵 乙抱遣去如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도 있지만 여운을 남길 때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부여의 테마파크나 출렁다리의 이름 앞에 붙은 서동요는 완료형이 아니다. 공주의 ‘가다(去如)’로 이 노래는 끝난다. 공주가 갔듯이 필자도 출렁다리를 건너서 가본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가는 길은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절벽과 풍광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산책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정담은 눈부신 존재로 절대적 주인공의 선화공주를 아름답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미래의 희망을 그리기도 한다. 

부여에 자리한 서동요 출렁다리를 걸어보고 다시 돌아가본다. 마를 캐던 가난한 민중으로 아름다운 선화공주와의 사랑도 만들어냈고 자격을 갖춘 왕으로 돌아왔다. 왕의 귀환이기도 하지만 백제의 무왕으로 인해 백제는 다시금 부흥의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아라곤이 귀환하여 아르웬 운도미엘과 행복한 사랑을 나누었듯이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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