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률하락이 만들어주는 미래의 단상
최근 들어 노인들의 무임승차에 대한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언론은 본질을 말하지 않고 노인의 나이가 65세 혹은 70세, 75세가 맞는지에 대한 문제만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노인들이 마치 큰 혜택을 받아서 세금이 누수가 되는 것처럼 몰고 가고 있다. 청년들도 먹고살기 힘들어죽겠는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혜택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무임승차의 연령대를 올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은 유독 세대를 갈라서 표현하려고 한다. 아이, 어른, 청년, 중년, 노인, X세대, MZ세대등 그렇게 구분한다고 해서 그 세대가 단일하게 규정되지도 않고 규정할 수도 없다. 그렇게 구분하면 좋은 것은 하나 있다. 지원에 규정을 두던가 갈라 치기를 할 때 매우 유용하다는 점이다. 나이가 먹었다고 해서 아이가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청년이라고 해서 생각이 젊은것도 아니다. 노인이라고 해서 생각이 고루하지만은 않다.
지하철에 노인이 덜 탄다고 해서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운행 횟수에 차이가 생기지도 않는다. 근본적으로 지하철 운영비용이 채워지지 않고 적자를 낸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지하철은 왜 적자일까? 인건비, 운영비용, 관리비용 등이 포함되어 지하철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왜 계속 무임승차의 연령이 거론이 될까. 총비용을 총이용자에게 1/n 했을 때 지불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이전까지는 지자체에서 세금으로 보전을 해주었지만 거두어들이는 세금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그 비용을 줄이겠다는 의미다.
솔직히 노인의 나이기준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노인이라고 해서 대우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든다. 노인 빈곤율이 OECD기준 최고인데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생산적이지 않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사회에 기여(과거의 기여는 중요하지 않다)보다는 짐이 되는 존재다. 생산인구가 줄어들어갈수록 정부는 계속 복지지출을 줄이려고 할 것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것은 세금을 덜 걷어서 덜 쓰겠다는 의미다.
경제적으로 투자가 많이 되고 생산성이 높으며 재화가 많이 몰려 있는 곳에서 많이 거두는 것이 대안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기업 법인세를 줄여주고 종합부동산세를 낮추어주는 것은 정부와 사회가 가장 많은 투자를 해서 만든 대상에서 세금을 덜 걷겠다는 의미다. 쉽게 예를 들면 A, B라는 땅이 있다고 치자. 처음에는 두 땅 모두 불모지여서 쌀이 별로 생산되지 않았다. 이에 가지고 있던 비료를 A에다가 모두 쏟아부어서 생산량을 높인다. 그 결과 A땅에서는 쌀이 엄청나게 많이 생산되는데 B땅은 여전히 생산량이 높지 않다. 시간이 지나 A땅에 있는 사람들이 왜 우리가 쌀을 더 많이 내야 하냐고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B땅에서 내는 쌀과 비슷하게 맞추자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B땅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빈곤해진다. 특정시점만 본다면 A땅에 사는 사람들의 주장이 그럴듯해 보인다. 어차피 크게 보면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이야 무임승차의 이슈만 불거지지만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수록 1/n에서 n에 해당하는 모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곳곳에서 공공에 해당했던 것들이 점차 축소가 될 것이다. 난방비 역시 그런 문제에서 불거진 것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에너지가 필요하며 움직여야 한다. 그 모든 것에는 자원이 필요하다. 자원은 국제적인 이슈에 의해 갑자기 폭등하기도 하고 희소해지기도 한다. 그걸 개인적인 차원에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대응력이 생기는데 그 사람들이 줄고 있다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 더 크다는 의미다. 공공의 영역을 더 효율화하고 누수되는 것이 없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미 미래의 복지축소는 시작되기 시작했다. 인구를 늘리기 위해 외국인을 고용한들 그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생산력이 높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투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부모에 의해서든 지역의 자원자체가 잘 갖추어져 있든 간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개인은 사회에 기여하기보다는 부담이 될 확률이 높다. 가정을 이루기보다는 혼자살 수밖에 없는 환경과 이미 연세가 지극한 부모와 함께 사는 자식들이 많다는 것은 개개인에게 투자가 불균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에 점을 찍어 선을 그어서 미래를 보고 있지만 미래는 정해지지는 않았다. 무임승차에 대한 이슈를 단순히 노인의 연령대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그리고 역시 나이가 들어갈 우리들의 미래는 어떻게 그려져야 할지 함께 생각해야 할 때다. 세상은 이분법적인 대안만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