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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6. 2023

스물에 죽다.

증평에 자리한 연제근이름을 딴 연제근 공원

20이라는 나이는 어떤 숫자일까. 연령대에 따라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20이라는 숫자는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어릴 때에는 20이라는 숫자가 되면 무엇이든지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20이 지난 사람들은 알겠지만 20은 그냥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나이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곳은 증평의 도안면이라는 곳이다. 조선후기까지 살구나무 행과 정자 정을 사용해서 행정이라고 했던 곳이기도 하다. 해와 달이 밝고, 바람과 비가 고르며 산수지질이 정갈한 승지길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1928년에 도안역이 개통되면서 역전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도안역이 개통되고 2년 뒤인 1930년에 연제근은 이 부근에서 태어났다. 

도안역의 옆에는 도안광장이 만들어져 있다. 옛날에는 중심 지였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조용한 분위기의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제근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연제근공원은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중 도안면 소재지 종합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 연제근상사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라고 한다.  

연제근 상사는 1930년 충북 증평군 도안면 노암리에서 태어나서 자라 도안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48년 국방경비대에 자원입대에서 청주 7 연대에서 훈련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군복무를 하던 중 20세가 되던 1950년에 한국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파죽지세로 밀려가던 국군과 연합군은 형산강을 도하해서 포항을 탈환하라는 공격명력이 그 일대를 방어하고 있던 제22연대로 하달되었다고 한다. 형산강의 위쪽 둑에는 북한군의 기관포진지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관포진지에 막혀 도하하지 못하자 22 연대 1대대 1중대의 분대장이었던 연제근중사가 분대원을 이끌고 기관포진지를 파괴하기로 한다. 

기관포 진지를 파괴하는데 성공은 하였으나 연제근 중사를 비롯하여 도하한 12명 중 10명이 전사하게 된다. 연제근 중사는 상사로 특진되었으며 1956년에는 무공훈장을 받게 된다. 

20세의 나이에 전투에서 사망한 연제근상사의 모습이 연제근공원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이자 지금도 정치적으로 소모되는 이슈이기도 하다.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연제근상사가 20세라는 나이에 사망한 이후로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동족상잔의 비극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한반도를 피로 물들이며 계속되었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살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의 생각을 단언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꽃다운 나이를 말할 때 20대를 많이 거론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 중간나이가 아닌 40대 중반이 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다. 

그의 희생 덕분에 형산강 도하 통로 개척을 할 수 있었고 이후 포항이 탈환되고 이어 서울이 수복될 수 있었던 발판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작년에 증평 출신 호국영웅 故연제근 상사(1930~1950)의 제72주기 추모식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었는데 올해로는 제73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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