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Feb 10. 2023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달마(達磨) 대사의 고사(故事)를 기리는 뜻의 절 이름은 숭림사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달마라는 이름은 누구나 한 번 이상은 들어보았다. 달마를 한국사람들에게 알리게 한 것은 바로 영화였다. 달마가 동쪽으로 갔는지에 대한 고찰을 그린 영화가 1989년에 개봉하고 제42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표범상뿐만이 아니라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으면 서다. 그전까지는 달마가 동쪽으로 갔던 것을 궁금해했던 사람은 많이 없었다. 지금도 달마가 동쪽으로 왜 갔는지 그 해답을 아는 사람은 각자의 몫에 맡기고 있다. 

이곳은 익산에 자리한 사찰로 김제에 자리한 금산사의 말사인 숭림사다. 앞서 달마이야기를 한 것은 바로 달마와 관련된 사찰이기 때문이다. 창건주는 미상이지만 중국의 달마(達磨) 대사가 쑹산(崇山) 소림사(小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한 고사(故事)를 기리는 뜻에서 절 이름을 숭림사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소림사라고 하면 보통 무술을 연상하게 된다. 1345년(충목왕 1)에 창건한 숭림사는 임진왜란 때 보광전(普光殿)만을 남긴 채 불타버렸고, 10년 뒤에 우화루(雨花樓)만을 중건했다가 1923년에 주지 황성렬(黃成烈)의 노력으로 보광전을 중수하고, 나한전(羅漢殿)과 영원 전(靈源殿) 등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 와서야 달마가 왜 동쪽으로 갔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영화는 노승과 동자승 그리고 번민하는 젊은 스님을 통해 불교의 철학과 성찰을 이야기하는데 깊은 산사의 노승 혜곡과 동자승 해진이 지내는 산사로 젊은 스님 기봉과의 소통을 그린 영화라고 할까. 

유물로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된 청동은입인동문향로와 비로자나삼존불, 목사자 2점, 법고 등이 있는 숭림사에는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825호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우화루·정혜원(定慧院)·영원전·나한전·요사채 등이 있다.

숭림사에 자리한 건물 중 하나인 정혜원에서 정혜(定慧)는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하는 선정과 현상 및 본체를 관조하는 지혜를 아우르는 말이다.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흘러간다. 

마음을 챙겨서 나아가고 물러나며, 나아가고 물러날 때 자신의 거동을 알아차리면서 행하는 것이 지관구행(止觀俱行)이며 정혜쌍수(定慧雙修)이며 정념정지(正念正知)인 것이라고 한다. 인도의 승 달마가 중국으로 갔고 중국에 있던 스님들이 동쪽으로 와서 한반도에 불교를 정착시켰다. 

자연의 섭리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흘러가듯이 돌다 보면 다시 제자리에 와 있는 것이다. 달마는 계속 옮겨가면서 알듯 모를 듯 그런 소리를 선문답 했을 것이다. 사람은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아무리 깨달음의 소리를 해도 이해하지 못하며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전국에 있는 잘 알려진 고찰에는 스님의 사리를 모셔둔 곳들이 있다. 사리는 산스크리트어의 ‘sarira’를 음사한 표현이며 이는 부처님의 육신을 화장하고 난 후 고체(固體)인 유골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산스크리트어이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는 요가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익산의 숭림사를 돌아보고 나오면서 홀로 생각을 해본다. 심중이라고 하면 가슴속의 생각을 말한다. 모두 마음을 밑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스쳐가는 그 생각의 흐름 속에 마음이 무게감 있게 가라앉을 때가 있다. 솔직히 달마가 왜 동쪽으로 갔는지 궁금하지는 않다. 그냥 가고 싶으니까 가지 않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미래의 조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