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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24. 2023

헝거게임

국민을 위한 정치인은 없고 쇼맨십만 있다. 

정치인들이 자신을 지지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들은 분열시키는 것이다. 삶이 넉넉한(넉넉하다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사람들은 세상일에 생각보다 많은 관심은 없다. 굳이 어떤 대상을 적으로 만들지 않아도 형편이 괜찮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론이 교묘하게 포장하고 정치인이 쇼맨십을 하면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실체적 진실을 확인해보지 않았는데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어떤 포장된 사실은 협소한 시각을 가지게 만들고 편 가르기를 하게 한다. 


시스템이 한 번 잘못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너무나 힘들어진다. 한 번 공고해진 권력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은 특히 법치를 강조하면서 잘못된 것도 받아들이라고 강권하기 때문이다. 영화 헝거게임은 소득과 생활수준에 따라 나누어진 국민의 1%가 거주하는 캐피톨 VS 대다수 서민이 모인 13 구역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캣니스의 고향인 12 구역이 캐피톨의 폭격으로 파괴되지만  생존자들이 13 구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캣니스는 반정부 세력의 중심이 된다. 

헝거게임은 책으로 먼저 읽어본 이야기다. 헝거게임이 처음 개봉했을 때와 지금은 더 심각하게 바뀌어가고 있다. 출산율이 왜 낮아지는지 전혀 이해 못 하는 정치인들은 한국도 헝거게임처럼 소득에 따라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한국이 과연 구역이 나뉘어 있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료보험이 대부분의 치료비를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큰 질병에 걸렸을 경우 바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한국사회이다. 각 구역이 나뉘어 있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구역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것은 상위 권역의 탐욕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홍대, 신사동등에서 장사하기 위해 가게를 얻으려면 소득을 상회하는 임대료등을 지불해야 한다. 건물주들은 상인들이 얼마를 버는지 상관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그런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어 희생할 사람을 찾으면 된다. 균형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지방에도 예산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선순환되는 것이 아니라 단발적이다. 전국에 자리한 혁신도시라고 불리는 곳은 모두 가보았다.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노무현의 시도는 절반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헝거게임은 결국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들 혹은 정치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희생양을 찾는지 볼 수 있게 한다. 국민이 함께 에너지를 만들어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실을 탓할 누군가를 만들어서 혐오하게 만든다. 그것이 훨씬 쉽고 간단하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잘되게 만드는 것은 무척 어렵고 안되게 만드는 것은 제일 쉽다. 진실된 칭찬은 어렵지만 빈틈을 파고든 비판은 너무나 쉽다. 그리고 그 비판을 한 자신이 똑똑하다는 착각까지 한다. 어떤 면을 보든지 간에 자신의 몫이지만 적어도 정치인들의 몰이에는 휩쓸리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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