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는 서문시장에 삼겹살 골목이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사람들이 모이면 가장 많이 먹는 것은 무엇일까. 돼지고기 중 삼겹살이며 삼겹살은 김치와 다양한 채소를 동반하게 만든다. 외국사람들은 살코기가 아닌 비계가 섞여 있는 삼겹살을 잘 먹지 않지만 한국인들은 그 고소함을 알기에 즐겨 먹는다. 그래서 전 세계의 삼겹살이 한국으로 많이 수출된다. 스페인은 가본 적도 없는데 스페인에서 생산된 돼지고기의 삼겹살을 이 땅에서 먹을 수 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은 삼겹살을 먹으면서 사람들과 한 잔 기울이기에 좋은 때다. 이곳은 청주시의 서문시장으로 삼겹살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먹는 삼겹살은 어떤 맛일까.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고기는 돼지고기이며 맑은 골 청주 사람들은 예로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 돼지고기를 함께 나눠 먹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슬프거나 기쁘거나라고 하면 중간은 없는 것인가. 그냥 아무 일 없어도 삼겹살을 먹어도 좋지 않을까.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 본다.
매년 한돈과 함께하는 2023 청주 삼겹살 축제가 열리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못하다가 올해에 야심 차게 이 골목에서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특별히 지랑물이라고 불리는 달인간장에 담가 굽거나 굵은소금을 뿌려 구웠는데 이는 잡냄새를 없애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맑은 골의 비법으로 전수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지랑물은 비가 온 뒤 썩은 초가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검붉은 빛깔의 낙숫물로 잘 쓰이지는 않지만 옛사람들은 안다.
이곳 골목에는 삼겹살집이 가장 많이 자리하고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기 굽는 샘새가 코안으로 들어온다.
4일까지 이틀간 열렸던 삼겹살 축제에서는 ‘한돈농가와 함께’라는 주제로 ‘청주삼겹살’과 우리 돼지‘한돈’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가 열렸다.
청주시는 2012년 전통시장을 살리고 삼겹살을 청주 대표 음식으로 특화해 관광 명소화하기 위해 서문시장을 삼겹살거리로 조성해 두었다.
한돈으로 더 행복함 삼겹살 데이에 한돈의 금을 받는 것도 좋을 텐데라는 잡생각을 잠시 해본다. 한 돈이 예전 같은 가치가 아니라서 그런지 더욱더 한돈의 느낌이 다르다.
늦어가는 시간이지만 이곳에 시민이 나와서 공연에서 노래도 부르고 어떤 분들은 이상한 춤도 추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삼겹살은 한국에서 어떤 의미일까.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삼겹살의 양은 일정한데 수요는 많으니까 국산 돼지가 아무리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해도 돼지고기를 수입해야 한다. 한국에 가만히 앉아서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키우는 돼지고기의 맛을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세계화가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
우리가 경제 위기를 겪고 그 위기를 극복할 때 서민들을 위로해 준 음식 역시 삼겹살이었지만 불과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삼겹살은 잘 먹지 않았다고 한다.
몸에 있는 삼겹살은 건강을 위협하지만 먹는 삼겹살은 고소하고 입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이제는 고소한 삼겹살을 먹어볼 시간이다.
잘 구워진 삼겹살과 익은 김치를 먹으면 그날의 피곤함이 잊히는 듯하다.
고기를 잘 굽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고기를 먹기 좋게 굽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는 함부로 가위라던가 집게를 들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 맡겨두면 된다. 괜히 나설 필요는 없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 때문에 전 세계의 돼지가 중국으로 가고 있지만 삼겹살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삼겹살에 진심인지 청주의 서문시장에는 삼겹살거리 고객지원센터도 만들어져 있다. 어떻게 고객을 지원할지 궁금해진다.
서문시장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곳에 청주읍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읍성이 있었을 때는 사방으로 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골목을 거닐다 보면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삼겹살 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주경찰서가 있었던 터가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1995년까지 있었는데 1921년 일제는 경찰의 유도 훈련장을 신축한다는 명목으로 청주읍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망선루를 헐어버리고 무덕전을 세웠다고 한다.
일제의 건물도 없어지고 그 전에 있었던 고려 시대에 세워졌던 목조 건물이었던 취경루였다가 망선루로 바뀌었던 거물도 없어졌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퇴락해 있던 누각을 목사 이백상이 중수하고 세조대에 한며오히가 편액을 고쳐 망선루라고 한 것이다. 망선루는 수많은 시인묵객이 문장을 짓고 시국을 논하던 청주문화의 산실이었다고 한다. 100년뒤에 삼겹살 문화는 어떤 식문화로 우리에게 남아있을지 궁금해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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