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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2. 2016

더 홀 트루스

소재의 그럴듯함, 아쉬운 마무리

키아누 리브스가 법정에서 선 영화로 대표적인 작품은 데블스 에드버킷이다. 그 작품이 나왔을 때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와 알 파치노의 연기가 하모니를 이루어서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 작품이 키아누 리브스의 몇 번째 법과 관련한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연기력은 항상 평타 이상은 하는 듯하다. 


옳은 것은 무엇일까? 정의? 선? 그런 것이 지금 한국사회에 있을까. 자신의 소신과는 상관없이 이기고 돈을 벌기 위한 어떤 변호사의 이야기는 어디든 넘쳐난다. 이미 한국 법조계는 그 해석을 넘어서 합법적이지 않은 길로 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그런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 방법이 공평하지 않다면 문제가 된다.


재력가였던 누군가가 죽었는데 그 범인은 바로 그의 아들이다. 모든 사람이 아들을 의심하는 가운데 아들은 협조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영화 초반에서는 조금은 쫄깃한 스릴감이 이어지지만 중반을 가기도 전에 그 긴장은 조금씩 루즈해진다. 과연 범인이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실마리가 알아서 풀리게 된다.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중심이 되는 이 영화는 법정의 논리적인 탄탄한 반격과 방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선과 악을 구분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적어도 탐욕에 의해 버는 돈과 정직한 돈은 구분할지 안다. 사람들에게 수많은 여자와 재물을 상납받고 권력을 휘두르던 원나라의 승려 양련진가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고발하던 혹리 내준신은 지금 보아도 탐욕적인 인간의 그 모습을 대표한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변호사는 법정에 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사람들을 옥죄고 기득권자의 권력을 지켜주고 나아가서는 원죄조차 없던 일로 만든다면 그런 법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드라마처럼 감상한다면 나쁘지 않은 영화 더 홀 트루스...기대는 먼 곳에다가 두고 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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