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Part 1

이몽룡의 실제 모델 봉화군의 계서당 종택

춘향을 처음 보았을 때 내면의 아름다움이 느껴졌을 것이다. 남원이라는 지역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던 지역이 아니었던가. 아름다운 남원의 광한루에서 있으면 시간이 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남원부사로 지냈던 부용당 성안의 로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성장했던 성이성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3년이 지난 1595년 성안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상북도 봉화군에는 계서당이라는 고택이 있다. 이곳에서 성이성이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 춘향전의 실제 주인공으로 춘향전의 주인공인 몽룡은 원래 성몽룡이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청백리이다. 자(字)는 여습(汝習)이고 호는 계서(溪西)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춘향전에서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호가 계서여서 이 집의 이름은 계서당 고택이다. 그는 삶에서 어사를 네 번을 지내는데 경상도와 호서, 호남 암행어사를 두 번 했다. 감찰하며 부패 수령들을 봉고파직시켰다. 이것 역시 춘향전의 소재가 되었는데 그가 지었다는 시인 '금준미주 천인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백성들의 삶을 모르지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탕진한 사람들을 탐관오리라고 불렀다. 어사출도를 하면서 그가 지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


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


동이의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상 위의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 소리 높더라

성이성은 1607년 (선조 40)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 성안의를 따라서 남원으로 간다. 그곳에서 기생을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남기는데 그것이 후일 춘향전의 뼈대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우연하게 남원의 기생 춘향을 만났는데 여기서 사랑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건물은 크지는 않다. 그냥 일반 양반가의 소박한 주택처럼 보인다. 남원이라는 도시는 아름다운 도시다. 봉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도시가 남원이다.

그는 일생을 권세에 동조하지 않았으며 정언, 헌납, 사간등을 역임하는 동안 직언으로 일관하였기 때문에 주의의 시기를 받아 승진이 순조롭지 못했다고 한다. 퇴곤 후에는 봉화에 있을 때 신관이 인사차 왔다 가면 자제를 대신 내보내 회시하고 관아에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암행어사 이야기에 왜 매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암행어사 박문수도 있지만 춘향전에서 이몽룡의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권력과의 연결점이 없이 임금이 임명해서 힘들게 살던 백성들을 괴롭히던 관료들을 벌하는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일 것이다.

여기에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사또를 벌하니 그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남원부사의 아들이었고 그 아들과 만났던 기생의 이야기는 양반의 자제와 사귄 이후로 갖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킨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게 된다.

춘향전은 한국서민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이성의 이야기는 서민들에게 스며들어 예술양식인 설화와 판소리를 통해 전파되었으며 서민사회의 꿈과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그렇게 춘향을 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만들었던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성이성은 관직생활을 하면서 약탈과 흉년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부민들에게 삼세(蔘稅)를 모두 면제해 주어 백성들이 기뻐하였으며 부처가 환생하여 돌아왔다며 '생불' 또는 '관서활불'(關西活佛)이라며 칭송하였다. 1664년(현종 15)에 향년 7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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