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밀도가 높아진 암울한 미래의 도시
미래의 기후변화와 팬데믹등은 사람을 실내공간에 더 많이 머물게 만들게 될 것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미디어에 의존하게 되고 지금 지어지고 있는 서울 및 수도권의 주상복합건물과 아파트의 높아진 용적률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더 가깝고 높게 짓는 것은 결국 그곳을 도시의 골치 아픈 공간으로 만들 미래의 씨앗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이야 쾌적한 곳에 거주하면서 수익성도 볼 수 있겠지만 다음 세대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영화 져지 드레드에서 등장하는 집합건물 피치트리스는 그런 주거공간이다. 메가시티에서 메가빌딩 새로 지어진 거대 빌딩은 피치 트리스라고 불리는 곳이다. 지금 지어지고 있는 주상복합이나 아파트의 높이를 생각하면 200층의 거대빌딩도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건물이 새로 지어졌을 때는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이 들어가 살지만 건물이 노후화되면 자연스럽게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들어가 살게 된다. 건물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밀도는 높아지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그 밀도를 감당할 비용을 낼 수준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서울의 곳곳의 밀도가 높은 곳에서 살고 있는 빈곤층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큰 불이 나거나 재난이 일어나도 그런 곳은 쉽게 개선이 되지 않는다. 메가 시티에서도 메가 빌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삶을 연명해나가지만 범죄에는 무방비로 노출이 되고 그 속에서는 총기와 갱단이 지배할 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쾌적한 공간을 원한다. 좁은 곳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도시의 밀도가 높아지게 되면 결국 경제적인 수준이 되는 사람들은 외곽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사람들은 어떤 그룹에 속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군이나 특정지역을 선호하는 것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경제적인 밀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그만큼의 기회가 있다. 하다못해 폐지를 줍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하고 종이를 밖에다가 배출해야 한다. 져지 드레드에서 보여준 미래 세상은 이미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미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한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거리에 나오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많은 주거의 형태들이 폐쇄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어떤 아파트들은 들어가는 데 있어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외지인들이 그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달갑지 않아 한다. 상호보완적으로 도시가 진화해 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고 사람들과의 접촉은 점차로 줄어들어가고 있다. 오직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주거의 형태가 열악하면서 감시하는 눈이 부족한 곳이 되어가게 될 것이다.
최근의 변화를 보면 알겠지만 법은 사람에 따라 편향적으로 적용이 되어가고 있다. 올바른 판결이라는 것이 힘의 논리로 혹은 그 논리가 적용이 안된다면 인정하지 않을 정도의 사회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져지 드레드가 등장하는 미래사회에서는 저지 - 심판자라 부르며 그중 가장 뛰어난 자가 바로 심판자 드레드이다. 지금을 사는 우리들은 미래의 어느 지점에 가면 많은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사회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밀도는 높아져만 간다. 더 짙어진 미세먼지의 밀도는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들이다. 한국의 도시화는 90%를 넘었다. OECD에서 가장 높은 도시화율이다. 앞으로 30년은 한국사람들이 미래에 어떤 도시에서 살 것인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사람과 도시는 닮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이란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가 아니라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느냐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좋아 보이는 것이 미래에도 과연 좋아 보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