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군 부안의 큰 부자였던 김경중의 아들 인촌 김성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생각 외로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지금까지 정말 여유가 너무 많아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새로운 발견을 한 사례가 적지가 않다. 진화론과 관련된 이야기를 쓴 찰스 다윈은 수많은 사람에게 궁금한 것에 대한 호기심을 관련 연구자들에게 보내서 답을 얻다가 그 지점에 이른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친일과 관련된 관점을 잠시 뒤로 하고 쓰려고 한다. 이곳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부안의 큰 부자였던 김경중의 고택이다. 그의 큰 아들이 인촌 김성수다. 김성수는 부유한 집안배경을 통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인촌 김성수 고창 생가는 오래된 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경중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큰 부자였는지 알게 해주는 곳이다. 이곳을 거닐면서 드는 생각은 소스타인 베블렌의 유한계급론이다.
자 문으로 걸어서 들어가 본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1899년에 발표한 유한계급론에서는 과시적 소비라던가 금전상의 경쟁 등의 말이 처음 등장하고 있다. 그는 과시소비가 과거에 약탈을 일삼았던 야만문화의 잔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나의 집이 여러 개의 공간으로 계속 둘러싸인 곳이 바로 인촌 김성수 생가의 특징이다. 인촌 김성수는 태어나서 일본의 엘리트 과정을 교육받은 후 한국에 와서 기존 업체를 인수해서 경성방직을 설립했고 동아일보를 창간하였으며 1946년에는 지금의 고려대학교를 발족시켰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유 있는 시간과 생각이 필요하다. 소스타인 베블런 역시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해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 7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독서만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곳에서 살았던 인촌 김성수와 수당 김연수는 형제다. 큰댁 안채는 1861년 111월 13일, 사랑채는 1879년 6월 7일,, 작은댁 안채는 1881년 10월 9일에 각각 조부인 낙제 김요협 옹이 건립하였고 큰댁 사랑채, 작은댁 사랑채등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1899년 기존 제도에 대한 경제적 연구라는 책을 출판했을 때와 비슷한 시기인 1891년 인촌 김성수가 이곳에서 태어난다.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있었던 시대다.
조선시대 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두 사람은 많은 사고의 전환이 있었다. 우리는 역사를 지나고 나서 평가할 수 있지만 당시 현재를 살아갈 때 옳고 그름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한다.
이 고택은 집을 열 바퀴쯤 도는 것만으로 하루의 운동량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예전에 사용했을 우물과 여러 농기구들과 정돈된 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베블렌이 말하는 유한계급은 아무것도 안 하고 놀 수 있는 계급을 의미한다. 주변 사람보다 더 높은 평가를 위해 경쟁할 때 생산과정에 종사하지 않고 노동하지 않고 자신의 계급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만을 한다는 것이다.
이 고택의 규모만 보아도 당시 노비들의 수를 예상할 수가 있다. 인촌 김성수는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여유로움을 배경으로 변화하는 당시 사회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다. 언론은 예전의 조선 왕실의 사간원이 담당했었을 당시 일본 유학 등으로 그 필요성을 보고 오늘날의 동아일보를 1920년에 창간하였다.
인촌 김성수는 언론과 교육 분야의 공로로 사후인 1962년 건국공로훈장(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전시동원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일제 말기인 1943년에는 조선인 대학생들에게 학도병으로 나가라고 촉구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소스타인 베블렌과 인촌 김성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항해 중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모에게서 자식에게 남겨지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상당한 경제적인 여유는 전혀 필요가 없어 보이는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