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려고 의술을 배운 박영이 머무른 송당정사
의술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지금 의대라는 곳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명예와 돈을 얻기 위한 수단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고 싶다면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좋고 좋은 일이 찾아오게 하고 싶다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운이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그런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도 변하게 된다.
구미의 선산읍에 자리한 이곳은 우연하게 지나치다가 이정표를 보고 들어온 곳이다. 탁 트인 풍광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송당정사라는 곳이다. 이곳에도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송당 박영이라는 사람은 조선시대 무신이자 성리학자로 변신을 했으며 나중에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의술을 배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이곳에 심어놓은 나무는 바로 모과나무다. 모과나무를 많이 보았지만 이곳만큼 아름답게 가지가 뻗은 모과나무는 많지가 않다.
조선전기의 인물로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이 심었던 대의 모과나무는 아니고 후손들이 그가 키우던 나무의 후계목을 다시 심었다고 한다.
이제 송당정사로 나아가 볼까. 선산에서 태어나 자란 박영은 스무 살을 갓 넘긴 1492년에 무과에 급제해 무관으로 벼슬살이를 시작했지만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학자로서의 삶을 위해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
구미의 낙동강이 보이는 곳에 송당정사라는 집을 짓고 학문 탐구를 했다. 고향 마을에서 조선 성리학의 정통 학맥을 이어가던 신당(新堂) 정붕(鄭鵬 1467~1512)에게 가르침을 청해서 대학과 경전을 배워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함)를 깨달았다고 한다.
비가 내리다가 마침 그쳐서 그런지 세상이 살짝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인다.
성리학을 배우면서 그는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아픔을 보듬기 위해 의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상자 치료를 하면서 의술 공부가 더 깊어졌고 독학으로 성취했지만 다양한 분야의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작은 집이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는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약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모과나무를 심어 약재로 쓰기 시작하였다. 백성들은 평소에 아픈 작은 질환에도 고생을 했지만 그 치료법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송당정사는 선산(善山)으로 낙향하여 낙동강가에 세운 강학지소(講學之所)로, 현재 건물은 1860년대에 중건된 것이다. 간결하고 소박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고, 건물의 규모와 구성에 대한 내용이 기술된, 흔치 않은 중건기(重建記)가 전해 오고 있어서 건축의 유래와 변화 과정을 비교적 정확히 추정할 수 있는 건물이다.
사람의 수명은 그리 길지가 않다.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고민도 하고 다툼도 하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사람이 송당 박영이다.
능력주의 시대의 고등교육은 이미 고착화되어 사회적 이동성이 심하게 제약을 받고 있다.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개인을 선별하지만 심판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세상으로 열린 생각을 가지며 변화했던 송당 박영은 백성들의 속으로 들어갔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