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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13. 2023

삶이 지나가면서...

전북 고창의 미당 시문학관에서 만난 미당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솥작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국화 옆에서 


사람은 지나고 보면 다양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그 족적에서 공도 있고 과도 있다. 그건 당시에 평가받는 것보다는 이후에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삶이 누구나 칭송받을만한 길로 갔는지 그것은 자신이 명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글의 초입에서 시는 고창에서 태어나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말 시인이었던 미당 서정주의 시다. 그의 시는 탁월한 언어 감각과 전통 소재의 활발한 활용으로 대한민국 문학계(특히 현대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목이라고 불리는 인물로 평가받지만 친일, 친독재 행위와 반인륜 범죄에 대한 미화 때문에 기회주의적 어용 문인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미당 서정주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사람의 인생은 무엇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한국은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곳은 미당 시문학관이라는 곳으로 옛날에 학교로 사용되었던 곳을 시문학관으로 만들어 미당 서정주의 삶과 시를 만나볼 수 있도록 조성을 해두었다. 

서정주의 글은 정말 잘 썼고 중요성이 높다 보니 여전히 때때로 실리며 모의고사에도 출제되기도 한다.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서당에서 공부를 하다가 1924년 인근의 줄포로 이사하여 줄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1929년 졸업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거부라고 알려진 인촌 김성수의 집에서 서정주 아버지는 집안의 마름으로 일을 했다. 인촌 김성수는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고려대학교를 설립한 사람이다. 

마을지도를 한번 살펴본다. 미당 시문학관을 중심으로 문학 산책로, 서정주 생가, 이재 서당터, 질마재 책방등이 자리하고 있다. 

미당 서정주의 생애를 보면 그는 문학 작품을 쓸 때 현재도 따라갈 이가 없는 수준의 단어 구사와 소재 선택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문학인들이 그의 언어능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은 친일 행적과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서정적인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길지도 짧지도 복잡하면서도 때론 단순한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미당 서정주의 아버지는 김성수 집안의 중간 관리자이며 소작농들에게 소작료를 거둬들여서 지주에게 가져다주는 일을 했었다. 그 기억도 미당 서정주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이곳은 세계문화유산 1번지라고 부르고 있는 전북 고창이다. 

우리말을 잘 활용하고 탁월하게 그려낸 것은 미당 서정주의 공일 것이다. 1941년 당시 서정주는 오장환, 이용악과 함께 한국 시단의 3 천재로 불리며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다고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 자화상


사람은 살아가면서 시대에 부응하면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 길이 잘못되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걸어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한 번 걸어가기 시작하면 자신을 부인하기란 쉽지가 않다. 미당 서정주의 삶을 보면서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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