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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2. 2023

케빈에 대하여

우리 안의 폭력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금도 수많은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문제는 그 씨앗이 어디서 자라나는지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예상되기까지도 하지만 방관 혹은 방조할지도 모를 것이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너무나 주관적이기 때문에 느낄 수 조차 없다는 점이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사람이 사회에서 극단적인 일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부추기기도 한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진화론적으로 우리 사회가 번영하기 위해서 각종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한 남자아이가 어떻게 극단적인 일탈로 다른 사람을 살해하기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를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하게끔 만들고 있다. 엄마는 정말 아이를 사랑하기만 하는 존재일까. 많은 엄마들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아이에게서 찾지만 그것 역시 바람직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엄마라는 설정은 우연하게 혹은 대충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살다가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하고 아이를 낳은 여자로 그리고 있다. 우연하게 관계를 했지만 아이에게서 자신의 자유분방했던 과거를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아이가 목적이며 아이가 대상이며 아이가 세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원망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남자아이는 이제 곧 개봉할 플래시의 에즈라 밀러가 청소년으로 자라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남자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무책임하고 방관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자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남자는 끊임없이 유전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여성을 찾아 관계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 무거운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아이가 안 좋은 아이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두려움이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 두려워한다. 솔직히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과 관계를 했던 대상을 바라보면 된다. 그 미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아이는 많지가 않다. 그 씨앗이 잉태했고 잉태해서 자란 공간에서 얼마나 새로워질 수 있을까. 그렇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학교 선생님도, 남편도,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못한 책임감은 결국 엄마의 몫으로 돌아오며 그녀는 알지 못하는 그 공허함에 길을 찾지는 못한다. 이 영화는 케빈에 대하여라는 원작 소설은 여성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작품으로 주인공인 ‘에바’의 1인칭 편지글 형식을 통해 사랑할 수 없는 아들을 끝까지 홀로 사랑해야만 하는 한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었다. 남자아이와 엄마와의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정답은 없지만 사람에게 제어받지 않는 폭력성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길로 이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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