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인 망루

북한군과 전투를 벌였던 김천 부항지서 망루

옛날부터 망루는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금이야 망루가 아닌 공중에서 위성이나 비행기등으로 관측을 하지만 하늘을 장악할 수 없었던 시대에는 높은 곳에 건축물을 쌓아놓고 군사적인 목적으로 활용하였다. 일본에서는 망루를 뜻하는야구라(櫓)가 화살 창고(야[矢]+구라[蔵])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이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하고 있다. 즉 원거리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의 등장으로 인해 망루는 필요한 시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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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작은 암자이기도 한 구룡사라는 사찰을 지나 조금 더 가면 김천의 부항면이라는 곳이 나온다. 김천시 남쪽 서편에 위치한 부항면은 시청에서 32km 떨어지고 면의 서쪽은 삼도봉을 중심으로 북은 황악산, 남으로는 대덕산이 이어지는 준령으로 대체로 지대가 높고 동쪽으로는 평평한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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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바로 망루가 남아 있다. 한국에서 망루가 남아 있는 곳은 많지가 않은데 요새 역할을 했던 망루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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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를 보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오면 간혹 사용하는 김천 파출소도 보인다. 높이 7m, 폭(하부) 3.7m, 폭(상부) 3.1m 크기의 사각형 망루로 6·25 전쟁 때 경찰이 운영한 망루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적이며 이 지역에서의 민·경합동 전투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 보존가치가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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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들어와 보니 높이 세워져 있는 망루가 보인다. 2008년 10월 1일 등록문화재 405호로 지정된 김천부항지서망루다. 한국전쟁 직후 직후 북한 인민군의 습격을 막기 위해 주민들과 경찰이 힘을 합해 콘크리트로 건축한 화기 진지 용도의 자주적 방어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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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서 증축되어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했는데, 고전적으로는 마을의 중요한 커뮤니티 및 경계 기능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근대전쟁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전쟁 관점에서의 망루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크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제1순위 공격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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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지리산과 삼도봉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북한군이 밤 11경부터 습격해 오자 부항주민 20여 명은 의용경찰대를 자청하고 경찰과 함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워 새벽이 밝아서야 전투가 멈추었으며 그때 순경과 동네사람 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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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보았더니 마치 땅굴처럼 지하에 구조물을 만들어두었다. 그 당시 생명을 읽었던 분들을 기리는 비도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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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앗아가는지는 지금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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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계단으로 내려가서 망루 쪽으로 걸어가 본다. 높이가 낮아서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어릴 때는 땅굴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땅굴과 관련된 이야기는 좀처럼 들어본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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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의 달이기도 하다. 호국보훈의 달에 맞춰서 김천의 부항지서 망루를 찾아가 본다. 이제 전쟁의 아픔도 기억하고 그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전쟁의 공간들도 다크투어처럼 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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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역주민과 경찰이 함께 힘을 합쳐 자발적으로 망루를 건립하고 목숨을 바쳐 지켜낸 부항망루가 호국의 성지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며 망루를 복원한 것이 2013년이다. 당시 참전했든 2명의 별동대원의 모습으로 밀랍보초병을 만들고, 안내판을 설치, 당시의 사이렌, 종을 달아 6. 25 때 모습을 되찾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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