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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16. 2023

인생의 무대

현재는 뮤지컬처럼 살고 미래는 관조하듯이

살다 보면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가는 때가 온다. 나이의 기준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대에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세상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닐 수는 있어도 자신만의 무대는 있을 수 있다. 혹시나 자신의 무대가 영화 미션 임파서블처럼 전 세계를 배경으로 올 로케이션해서 그려질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그 마음은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연극이나 오페라, 뮤지컬은 똑같은 시나리오가 있더라도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다. 자신의 무대에서 자신이 연기한 그 모든 것은 그 순간에만 유니크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방식이 대부분 지위나 돈, 가진 것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지만 여유 있게 살고 싶다는 것은 누구나 보아도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매일매일을 자신만의 무대에서 연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제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오페라는 카발레리아루스티카나와 팔리아치의 공연이다. 두 공연다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사람들은 희극적인 결말을 맞고 싶어 하며 살아간다. 삶의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고 결말에서 축복을 받기를 원한다.

무대에서 홀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몇 명이 올라가서 관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분명히 말이 들릴 텐데 연극이나 오페라에서는 옆에 사람을 두고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상대방은 듣지 못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무대에 많은 사람이 올라간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살필 수는 없다. 특정한 나이가 되면 자신의 무대에 올라가야 할 사람들을 특정할 때가 온다. 물론 예전처럼 많은 사람이 무대에 있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자신만의 무대에서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을 연기가 안 좋은 사람도 꼭 출연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가족이다. 연기도 엉성하고 관계설정도 애매해도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올려야 될 때가 있다. 자신의 무대에서 중요한 조연이기도 하다. 열심히 연기를 가르쳐보려고 하지만 늘지가 않는 것이 자신의 영역밖이다. 심지어 자신이 너무나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면서 무대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기를 원하기까지 한다.  

무대에서의 모습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좋아 보인다고 생각해주었으면 할 것이다. 내면은 쉽게 보여줄 수 없으니 가치가 있어 보이는 걸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람은 자신의 무대에서 광대가 되기도 하고 신사가 되기도 하고 숙녀가 되기도 한다. 

무대에서 연출은 관계설정이기도 하다. 연출이 형편없으면 극에 몰입하기가 힘들어진다. 공감하는 연인관계인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화목한 가족인데 서먹서먹하다면 어떨까. 무대위에는 다양한 소품들이 있다. 고급스럽게 보이는 것도 있고 저렴하게 보이는 것도 있다. 필요한 것들은 그렇게 셋팅이 되지만 무대에서 길어야 100여년 정도만 놓여 있게 된다. 

어쨌든 간에 아무리 긴 오페라라고 하더라도 막은 내린다. 사람들은 자신의 무대에 막이 내릴 것 같지 않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아이 때는 부모의 무대를 보면서 자라난다. 부모의 무대 위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 모습 속에서 삶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대에 누군가를 등장시킬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의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삶은 자신만이 연출할 수 있다. 누군가가 연출을 해주는 것은 그것은 온전한 자신만의 삶이 아니며 그 삶이 행복해질 수 조차 없다. 무대에서 퇴장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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