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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26. 2023

사교육의 관점

수능의 킬러문항이 출제되지 않으면 괜찮은 건가?

한국에서 사교육의 문제가 왜 해결이 안 되는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수능의 난이도를 너무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사교육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난이도가 너무 높은 문제를 내는 것은 일부에 영향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난이도 높은 문제가 나오지 않으면 사교육을 덜 시키게 될까. 사교육은 본질적으로 대학의 서열화, 기업에서의 평가와 소득과 직결되어 있고 사회에서 평가받는 사회적 지위와도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대학의 서열화가 되어 있는데 서열화된 대학은 열린 관점으로 학생들을 받아들일까. 아무리 소신을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지방대학을 갔다고 하면 그걸 인정할 것인가. 왜 점수가 높으면 서울의 주요 대학으로 가야 하는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왜 자신은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소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대를 가야 할까. 사회적 지위와 소득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게 되면 주요 명문대나 해외의 잘 알려진 대학을 나오지 않는 이상 올라가기 힘들어진다. 


과연 교육에서 학생들은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일까. 같은 방식의 공부와 점수가 한 사람을 잘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사교육의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를 다면 평가해서 대학을 갈 수 있는 제도는 오히려 가진 부모들에게 더 유리한 판을 만들어주었다. 그에 비하면 수능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공정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일리는 있다. 


고등학교를 가면 서울대를 몇 명 보냈는지 플래카드를 걸어놓는 현실에서 킬러문항을 없애본들 다른 방법을 고안하지 않을까. 어차피 수능등급이 나누어지듯이 학생들을 등급을 나누어서 사회에서도 등급을 나누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합한 평가라고 생각한다면 사교육은 없어지지 않는다. 직업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전제조건이 따른다. 어떤 직업은 그 전제조건이 가혹할 만큼 노력을 해야 하며 노력을 해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직업들은 조건들이 필요하고 기업에서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소양이 필요하다. 조건과 소양은 과연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 있을까. 조건과 소양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결정되어 버린 학벌에 갇혀버린다면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갈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정부나 교육당국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대우받기를 원하면서 차별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대우는 받고 싶어 하고 차별은 하고 싶어 한다. 이런 기질을 가진 한국사람들은 결정된 룰에 따라 경쟁해서 나름의 성과를 이루면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이라고 착각한다. 


필자의 경우 사교육의 문제에 대해 부모의 완전한 무관심 속에 온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았지만 성장해서는 그것이 걷고 싶은 길에 큰 바윗돌로 작용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적지가 않다. 아무리 가고 싶은 길을 걸었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구성원이다. 사회는 홀로 만든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것이며 어떤 시점에서 필자 역시 살아갈 뿐이다. 


어떤 성향의 정부가 되었든 간에 사교육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대학 서열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평등하게 나누고 다시 시작할 정도의 변화가 아니면 입시와 관련한 규칙만 바꾸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 수능을 보게 될 학생들에게 혼란만 있을 뿐이다. 물론 사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혜안이 나오는 것을 바라지만 그럴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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