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ul 31. 2023

음주사고

사람에게 100% 공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야 되겠다는 생각자체를 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 사고가 있었다. 차를 바꾸고 싶기는 한데 별 문제는 없고 잘 굴러가고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속내는 누구나 비슷하다. 그런 마음을 가진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다. 물론 같은 차량을 가지고 10년 가까이 운전하기도 했고 한 차량을 가지고 20만 km를 넘는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면서 열심히 살았던 스스로에 대한 보답이 필요하지 않을까란 막연한 그런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다음에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필자 역시 살아오면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정도가 무엇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살았다.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며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굳이 경험해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의 일들은 너무나 많다. 경험은 좋은 것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굳이 위험이 따르는 경험은 하지 않아도 좋다. 

필자가 운전하다가 음주운전을 한 차량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된 차량의 모습이다. 뛰어난(?) 운전능력으로 당시 20년이 넘는 완벽한 커리어(?)를 가진 운전경력자라도 들이받는 차량에는 답이 없었다. 같이 차량에 탑승했던 동생이 있었는데 상태는 필자보다 괜찮은 이유를 보니 운전석 쪽의 충격이 훨씬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친구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두부로 만든 음식을 먹을까를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에 뒤에서 운전석 뒤쪽에서 엄청난 추돌이 있었다. 

같이 동고동락하던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필자의 차량은 폐차가 되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파손이 되는 것도 쉽지가 않을 듯하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10% 정도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가 않다. 극단적인 경험을 해보고 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물론 그걸 의도적으로 할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전 신탄진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는 일찍이 술을 마시면서 이미 음주운전을 할 마음을 먹고 있는 듯했다. 그 차량은 필자의 차량을 적지 않은 시간 따라왔다. 신혼이었던 그 음주운전자의 부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기에 복수의 그런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이 되지 않는다면 100%의 공감 같은 것은 일어날 수가 없다. 모든 극단적인 경험을 모두 해볼 수는 없다. 그런 사람치고 자신의 명을 유지하는 사람은 없던지 부모에게 받은 신체 그대로 사는 사람은 본 기억은 없다. 

특히 술집등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음주운전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매출을 올릴 수는 있어도 인간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인간성이 없는 사람이 과연 인간이라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렇지 않게 음주운전을 하고 자신에게 피해만 없다면 눈을 감아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함께해 주고 장렬하게 전사를 해준 차량은 사라졌다. 음주운전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를 넘어서 죽음을 선물해 줄 수 있다. 그 선물은 당신에게도 찾아올 수도 있다. 반갑게 맞이할지는 몰라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성 상실의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