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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5. 2023

홀로 서는 일

8.15 통일예술제가 열렸던 홍성을 방문해 보다. 

독립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홀로 선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독립이라는 것이 어떤 많은 것들을 만들어내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온전한 독립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 생각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일제에 점령을 당했던 대한민국은 일본과 국지적인 전투를 했지만 전쟁은 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부터 온전한 독립이 되지 않았기에 대한민국은 수많은 풍파를 겪어 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945년에 결국 독립을 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은 모든 자원을 다 쥐어짜고서라도 미국과의 전투에 모든 역량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시 일본이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서 한반도에서 수많은 물자를 약탈하듯이 가져갔었다. 

지난 12일 홍성에서는 8.15 통일예술제가 열렸었다. 통일예술제는 매년 홍성민예총이 주최해오고 있다. 이번 통일예술제는 홍성민예총과 한국민예총·충남민예총이 지난해에 이어 함께 했다. 모두 1, 2부로 나뉘어 진행된 통일예술제는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 통일에 대한 열망을 담았다고 한다.  

홍주성이 자리한 곳에는 홍주성역사관이 있는데 홍성에 대한 오랜 역사에서부터 광복전에 활동했던 독립운동의 흔적을 살펴볼 수가 있다.  충남에 본적을 둔 독립유공자는 모두 1천682명이다.

1906년 이후 국내는 물론 만주, 연해주 일대 한국독립운동의 시발이었고 민족적 각성을 촉구한 민족자강운동이 있었다. 당시 홍성지역에서 일어난 '홍주의병'의 항일무장투쟁은 국가누란의 위기에 국민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 국권을 다시 회복하고자 했던 불굴의 민족운동이었다. 

의병장 김복한은 홍주부 관할 22개 군과 홍주군 내 27개 면에 통문을 띄워 의병을 모집했다. 1896년 11월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홍성의 김복한, 이설, 홍주향교 전교 안병찬 등의 선비들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청양의 선비들도 합세해 홍주성을 점령했었다. 

홍주의병 지휘부에 참가했던 보령 선비 유준근은 홍주성이 함락될 때 일본군에게 잡혀 무기형을 받아 대마도로 유배된 후 스승 최익현을 그곳에서 만났다고 한다. 홍주의병은 이후의 의병항쟁 확산, 1910년대 광복회 비밀결사 독립운동, 충남 전역의 3·1 운동, 1920년대 김상옥·한훈의 암살단과 1930년대 윤봉길 의거 등 독립운동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한국은 자주적인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제약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이전에 청나라는 병자호란 이래 조선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며 조선의 문호 개방을 반대했다. 이 반대로 인해서 조선은 변화의 기회를 놓치고 청나라가 일본에게 패배하자 한국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일본의 야욕을 피할 수가 없었다. 

홍주성역사관을 돌아보고 홍주성의 주변을 걸어본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 것인지 과연 잘 판단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시대나 지금 시대나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독립이라는 것은 홀로 일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78년 전에 홀로 섰다고 말하는 광복으로 인한 독립이 되었지만 지금도 홀로 서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의 생각이 곧게 서있고 자신만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지 2023년 광복절에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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