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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30. 2023

사회적 맥락

사회의 문제는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받게 된다. 긍정적인 영향만 받고 주체성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영화의 제목처럼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 외로 부정적인 영향뿐만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람 모두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이 애 하고 찰나의 순간을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배려하는 삶을 산다면 아무런 사건사고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명상록이라는 책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의 비율이 훨씬 많은 것이다. 


"그(인간이라는 인형의) 줄을 잡아당기는 자가 마음속에 숨어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것은 설득의 힘이고 생명이며, 말하자면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 명상록 11장 중에서...


모든 원인과 결과는 맥락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결과(사건사고)를 파악하기 위해 나무만을 본다. 나무만을 보고 파악하면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세상에 셀 수 없이 많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조선시대의 삶까지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삶의 방식이 그 시대에 있었다면 모든 제도와 시스템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머물게 된 것이다. 생각이 과거에 머물러 현재를 보고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런 사람의 행동방식은 피해망상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은 현실에서 만나볼 수도 있다. 


12년의 의무교육을 하고 대학진학률이 73.3%(2022년 기준) 어떤 국가보다도 높은 한국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있을까. 자아실현을 위한 투자를 이렇게 많은 한국에서 행복지수는 10명 중 불과 3명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대학진학률과 행복지수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이고 있다. 행복은 누군가와 비교에 의해 크기가 결정되지 않지만 사회는 비교가 가능하도록 수치화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끼지 않지만 그것이 측정가능한 수치로 나타나게 되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어떤 척도는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영향을 미친다. 


최근의 범죄의 맥락을 보면 예전의 강력범죄와 달리 계획적이지 않다. 연쇄살인과 달리 강력범죄의 경우 그만의 계획이 있다. 즉 동기가 비교적 명확하다는 의미다. 묻지 마 살인이라고 할지라도 동기는 있다. 그렇지만 그 동기를 기존의 강력사건과 유사하게 접근하면 사회적 맥락을 살피지 못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겉으로는 큰 변화는 없었지만 한국사회는 심각하게 파편화되었다. 생각의 메아리효과가 극대화되는 유튜브, 소통조차 되지 않는 1인가구 증가, 비교가 가능한 사회적 지수 등은 사회적 부적응을 넘어서 사회에 대해 칼날을 드리우게 된다. 모든 결과를 개개인의 노력으로만 평가하고 평가받는 사회에서 그들을 법의 단죄로만으로 막을 수는 없다. 


사회적 맥락상으로 볼 때 자식을 살해하고 근단적인 선택을 하는 부모, 대응력도 없는 어린아이를 학대하고 심지어 살해까지 일삼는 부모, 자식에게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 부모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유전자를 물려준 생명체에 불과함에도 그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자식에게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 부모는 물론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사랑으로 표현하겠지만 결국 자신의 자식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전자는 범죄고 후자는 범죄라는 차이에 불과하다. 자신의 유전자를 받은 자식이 잘되었으면 좋은 마음이 극대화되면 사교육비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고 자신의 유전자를 받은 자식이 자신이 없이 극단적으로 불행해질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면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하나의 국가 그리고 사회는 특정한 계층이나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적 맥락을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건강하지 않은 사회의 맥락은 파악하기 힘들면서 극단적인 흐름을 보이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 일이 일어나는 것 같지 않지만 속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의 응력이 비축된 판과 판이 맞닿아 있다. 가볍게 여진이 일어나면 개개인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전개되는 것이고 예측가능하지만 문제가 발생할 요소들이 합쳐지게 되면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큰 사고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나서 흔히 각종 시사프로그램에서 가해자를 추적하게 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주변사람의 평이 적지가 않다. 어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은 몇 번 보는 것으로 알 수가 없다. 심지어 곁에서 오래 봐왔더라고 하더라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 시대의 사회적 맥락은 그 사회를 반영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모여서 아주 작은 돌을 쌓아 올린 결과라는 의미다. 자신의 돌을 놓을 때는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전혀 다른 결과물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맥락을 집어낼 수 있다면 이 사회에 흐르고 있는 긍정기류나 부정기류가 어떻게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가 있다. 영혼이 육신에 스며들어 살게 되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모두 자신만의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AI기술이 더욱더 고도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는 엄청난 데이터들이 쌓이고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산속에 살며 세상과 단절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어도 자연이 품어주기 때문이다. 맥락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듯이 모든 사람은 단절되어 있지 않다. 좁은 의미로 본다면 자신과 자신과의 만남 넓게 본다면 사회와의 만남이다. 긍정, 부정, 극단적등의 모든 만남은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면서 어떤식으로든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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