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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8. 2023

대전 엑스포 93

대전을 바꾼 지난 30년의 시간여행

93년 엑스포가 열리기 전까지 대전은 그냥 중부의 규모가 조금 큰 도시에 불과했다. 엑스포 93은 대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만들어주는 국제행사였다. 대전에서 93년도를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라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할 수밖에 없다. 대전에서 살고 있는 40대 이상의 연령대라면 엑스포에 대한 추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날의 기억을 돌아보는 전시전이 대전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어서 찾아가 보았다. 

1993년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다. 1851년 영국 런던에서 만국산업박람회가 열리고 나서 1893년에는 조선의 이름으로, 1900년에는 대한제국의 이름으로 세계박람회에 참가한 후 대한민국 대전에서 1993년에 세계박람회가 열리게 된다. 

산업화가 시작되고 나서 인류의 역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규모의 전시장을 설치하고 여러 국가가 자신들의 기술력과 상품을 선보이는 근대적인 의미의 세계박람회가 열리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도 여러 번 등장했는데 2015년에 개봉한 투모로우랜드에서의 배경은 1964년에 열린 뉴욕 세계박람회였다. 

30년의 기억, 대전엑스포에서도 미래를 선도하는 다양한 기술이 등장했었다. 당시 대전에 흐르던 수많은 실개천은 덮이고 둔산이 개발되면서 본격적인 대도시로의 발돋움을 시작했던 때였다. 멀게만 느껴졌던 유성이 가까워졌던 것도 그때였다. 

조선시대에도 참가했었지만 전 세계에 조선은 작은 소국처럼 생각되기만 했었다. 국제박람회 기구가 공인한 전문엑스포이기도 한 1993년 엑스포는 아시아에서 열린 두 번째 세계박람회이며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열린 첫 번째 대규모 국제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인프라 조성과 엑스포장 건축, 국민들에 대한 홍보가 절실했던 때였다. 

예전에도 금과 은 등으로 제작된 기념주화를 모은 적도 있었는데 한국사람들에게 기념주화에 대한 이미지를 확산한 것은 바로 대전 엑스포 93을 기념하는 기념주화였다. 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기념주화를 수집하기 시작한 때였다. 

버스등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관람객 수송 도로망계획도 세웠었다. 엑스포장까지 가는 인터체인지로 청주, 청원, 신탄진, 대전, 엑스포(북대전), 유성, 서대전, 옥천 등으로 계획이 되었다. 지선망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까지 고려했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대전을 과학의 도시라고 말하지만 대덕연구단지등이 자리한 것을 알리고 지역균형발전등에 대한 고려를 통해 엑스포가 대전에서 개최되는 것이 결정된 것은 1989년이다. 당시 최종 후보지로 올랐던 곳은 서울 송파, 인천, 대전 등 다섯 곳이었다. 

대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1993년에 갑천, 유등천, 대전천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냥 자연하천의 형태였지만 엑스포를 개최하는 것을 기점으로 대전의 3대 하천이 오늘날의 모습처럼 재정비되게 된다. 

축제로 본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인 93일 동안 엑스포장 내외에서 수많은 문화행사가 진행되었다. 

대전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꿈돌이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지금까지 대전시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대전엑스포 93의 마스코트 꿈돌이는 꿈과 희망을 주는 박람회의 이미지를 귀여운 장난꾸러기 아기우주요정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과 교감이 가능하며 타원의 전자궤도와 핵은 과학기술의 미래상을 표현한 것이다. 

93년, 93일의 개최기간을 기념하여 만든 한빛탑은 당시 대부분의 시설이 철거된 지금도 남아 있다. 높이 93미터의 상징 조형물은 빛, 과학, 우주를 모티브로 외관을 설계했으며 첨성대를 상징하며 1,993개의 화강암은 시간을 상징하고 있다. 

그날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물품과 기념품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1993년에서 정확하게 100년 전인 1893년 시카고에서는 콜럼버스가 아메리가 대륙을 발견한 400주년을 기념하며 시카고 만국박람회(World's columbian Exposition)가 개최되었다. 총 47개국이 참여한 이 박람회에 조선은 기와집 형태의 한국관을 지어 참가하였다. 

30년을 돌아보며 생각해 봐도 분명 대전엑스포 93은 대전의 발전을 상당히 앞당긴 것은 사실이다. 대전의 현대사에서 가장 큰 행사이기도 했고 앞으로도 그런 규모와 의미를 가진 국제행사가 열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30년은 시간은 그렇게 흘러서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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