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과 서원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과 창주서원 묘정비

옥천군 이원면에는 전국의 묘목이 거래되는 큰 시장이 있는데 봄에 바쁜 것이 특징이다. 이원면은 지역이 넓어서 곳곳을 찾아보면 옛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옥천군 이원면에는 개심저수지라고 있는데 저수지를 지나서 이원면의 묘목공원 쪽으로 가면 오래전에 세워둔 옥천 두암리 삼층 석탑과 마을의 안쪽에는 창주서원 묘정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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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버스정류장이 하나의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에도 버스정류장이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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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저수지로 인해 장왜 또는 장화라고 부르던 마을은 수몰되면서 주민들은 사방으로 위주하게 되었고 윗부분에 자리 잡은 마을은 1997년 문화마을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약 360여 년 전에 진주강 씨 한제처사가 정착한 세거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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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저수지를 지나서 옥천묘목공원 쪽으로 가면 오래된 석탑이 남아 있다. 멀리서 보면 어떤 석탑인지 모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형태를 잘 갖춘 석탑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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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의 옆에 자리한 석탑은 고려 전기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라고 한다. 이층의 기단 위에 탑 몸돌 부분을 올렸고 상륜부에는 석탑이 조각이 되어 있다. 이 석탑의 규모는 작지만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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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면석에는 신라와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안상(眼象)을 새기고 초층탑신에는 문비(門扉)와 자물쇠가 새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석탑만을 조성해두지 않으니 크지는 않아도 오래전에는 사찰이 있지 않았을까.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과 창주서원 묘정비는 이원천을 사이에 두고 다리를 건너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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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에 있는 조선후기 창주서원 창건 과정을 기록한 묘정비로 비문의 글씨체는 예서(隷書)인데, 아래쪽이 마멸되어 지은이와 쓴 이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각각의 첫 글자인 “恩”과 “安”은 은진(恩津) 송시열(宋時烈)과 안동(安東) 김수증(金壽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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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주서원은 이곳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중봉(重峯) 조헌(趙憲, 1544∼92)과 유학자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의 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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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비문은 1689년(숙종 15)에 짓고 쓰였으나 비를 세우지 못하다가 1697년에 가서 추기(追記)를 더해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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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 서원 건물을 옮겨 다니다가 1689년 이산(伊山) 서쪽 기슭의 경승지에 건립하는데 그 후에 청나라 황제의 사액(賜額)을 받게 되자 그간의 내력을 적어 이 비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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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양은 어떤 모양이 좋을까. 역사 속에서 흔적을 찾아가다 보면 복원보다는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떨어지는 낙엽과 꽃잎은 다시 붙일 수는 없기에 새로운 삶의 흔적이 돋아나기를 바라는 것만으로 좋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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