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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2. 2023

장원방마을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행동했던 구미 하위지

구미의 선산이라는 곳에 가면 마을 이름이 장원방이라는 곳이 있다. 마을의 주변에는 18세기에 지금의 선산초등학교 자리에 건립된 후 1914년 현 위치로 옮겨져 선산면사무소로 사용되던 선산객사가 있다. 지금의 선산읍 이문리와 노상리, 완전리 일대를 장원방이라고 부르는데 장원 급제자가 많이 나오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마을에서 공부한 김종직(1431-1492)으로 1476년 선산부사로 부임할 당시 선산지리도(善山地理圖)를 완성하고 지도 위에 선산을 상징하는 10가지(선산 10절, 善山十絶)를 시로 썼다. 

선산에는 단계하위지선생묘도 자리하고 있다. 선산 장원방의 최고 명문가는 진양하씨 집안이다. 하담(河澹)을 비롯해 그의 아들 하강지(河綱地), 하위지(河緯地), 하기지(河紀地)가 대를 이어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1435년 생원시 합격 후 1438년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집현전에 들어가게 된 하위지는  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고 이후 예조로 자리를 옮겨 예조참의를 거쳐 계유정난 이후 예조참판에 올랐다. 

이 길은 그의 묘소로 가는 길이다. 별다른 부침 없이 벼슬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하위지는 이후 단종복위운동 때 참여하여 국문을 받고 거열형을 당하였다. 

선산의 자랑이기도 했던 하위지는 형제 모두 단종 복위 운동에 휘말려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으며 아들인 하호, 하박도 함께 참형을 당하였고 아내와 딸은 모두 관노가 되었다. 

1984년 선산군 시절부터 시작된 단계백일장은 선산 출신의 사육신 중 한 분인 단계 하위지 선생의 높은 학문과 충절을 기리고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과 문예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단종복위운동 당시 사육신뿐만이 아니라 허조는 아버지 허후가 사사되자 단종복위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대전에서 가까운 동학사에 가면 숙모전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복위운동을 했던 허후와 허조가 배향되어 있다. 

선산의 장원방 마을에서는 15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는데 그중에 1577년(선조 10) 알성시 갑과에서 장원을 차지하며 중앙무대에 진출한 김여물은 임진왜란 때 신립과 함께 충주 방어에 나섰다가 탄금대에서 신립과 함께 물에 투신해 순국했다. 


장원방을 기억하기 위해 2026년까지 120억 원을 들여 구미시 선산읍 노상리(3만 721㎡)에 장원방을 조성할 것이라고 한다.  건축 연 면적 1천500㎡ 규모의 지하 1~지상 2층 기념관에는 장원방 출신 15인의 인물 전시실, 공부의 신(神) 수능 만점 기원 소원 돌등이 놓일 것이라고 한다. 

2010년이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더니 벌써 2020년대도 중반을 향해가고 있다. 

하위지는 국문 과정에서 성삼문(成三問) 등이 당한 작형(灼刑: 불에 달군 쇠로 죄인의 맨살을 지지는 형벌)은 당하지 않았으나, 사육신 등 여러 절신과 함께 거열형(車裂刑)을 당하였으나 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길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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