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방마을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행동했던 구미 하위지

구미의 선산이라는 곳에 가면 마을 이름이 장원방이라는 곳이 있다. 마을의 주변에는 18세기에 지금의 선산초등학교 자리에 건립된 후 1914년 현 위치로 옮겨져 선산면사무소로 사용되던 선산객사가 있다. 지금의 선산읍 이문리와 노상리, 완전리 일대를 장원방이라고 부르는데 장원 급제자가 많이 나오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마을에서 공부한 김종직(1431-1492)으로 1476년 선산부사로 부임할 당시 선산지리도(善山地理圖)를 완성하고 지도 위에 선산을 상징하는 10가지(선산 10절, 善山十絶)를 시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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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에는 단계하위지선생묘도 자리하고 있다. 선산 장원방의 최고 명문가는 진양하씨 집안이다. 하담(河澹)을 비롯해 그의 아들 하강지(河綱地), 하위지(河緯地), 하기지(河紀地)가 대를 이어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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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5년 생원시 합격 후 1438년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집현전에 들어가게 된 하위지는 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고 이후 예조로 자리를 옮겨 예조참의를 거쳐 계유정난 이후 예조참판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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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그의 묘소로 가는 길이다. 별다른 부침 없이 벼슬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하위지는 이후 단종복위운동 때 참여하여 국문을 받고 거열형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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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의 자랑이기도 했던 하위지는 형제 모두 단종 복위 운동에 휘말려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으며 아들인 하호, 하박도 함께 참형을 당하였고 아내와 딸은 모두 관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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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선산군 시절부터 시작된 단계백일장은 선산 출신의 사육신 중 한 분인 단계 하위지 선생의 높은 학문과 충절을 기리고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과 문예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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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복위운동 당시 사육신뿐만이 아니라 허조는 아버지 허후가 사사되자 단종복위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대전에서 가까운 동학사에 가면 숙모전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복위운동을 했던 허후와 허조가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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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의 장원방 마을에서는 15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는데 그중에 1577년(선조 10) 알성시 갑과에서 장원을 차지하며 중앙무대에 진출한 김여물은 임진왜란 때 신립과 함께 충주 방어에 나섰다가 탄금대에서 신립과 함께 물에 투신해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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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방을 기억하기 위해 2026년까지 120억 원을 들여 구미시 선산읍 노상리(3만 721㎡)에 장원방을 조성할 것이라고 한다. 건축 연 면적 1천500㎡ 규모의 지하 1~지상 2층 기념관에는 장원방 출신 15인의 인물 전시실, 공부의 신(神) 수능 만점 기원 소원 돌등이 놓일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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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더니 벌써 2020년대도 중반을 향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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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지는 국문 과정에서 성삼문(成三問) 등이 당한 작형(灼刑: 불에 달군 쇠로 죄인의 맨살을 지지는 형벌)은 당하지 않았으나, 사육신 등 여러 절신과 함께 거열형(車裂刑)을 당하였으나 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길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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