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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19. 2023

김천의 냉면과 원계서원

김천의 맛을 맛보고 이야기가 있는  곳을 찾아서

지역마다 고유한 맛을 지키면서 맛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음식점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많은 메뉴를 취급하는 음식점은 잘 가지 않는 편이다. 그렇게 많은 맛을 단시간에 낸다는 것은 정성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국에 있는 잘 알려진 맛집은 한 가지 혹은 몇 가지 정도만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 역사를 가진 맛집 중에 냉면만 한 것이 있을까. 육수도 다르고 고명도 다르며 면발의 쫄깃함도 모두 다르다. 그런 맛을 찾아다니다 보면 이런 게 삶인가 싶을 때가 있다. 

김천에서 가장 유명한 냉면집의 냉면 비주얼은 이렇게다. 한우 육수의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뽀얀 국물 위에 얹어진 냉면과 그 위에 오이채, 배, 수육, 계란, 양념장과 계란 지단이 냉면의 비주얼이다. 

김천에서는 김천시가 인증하는 음식점을 으뜸음식점이리고 해서 지정하는데 이 음식점 역시 으뜸음식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역사의 공간을 찾아가기 전에 여유를 가지게 하는 것은 바로 맛있는 음식이다. 

다 먹고 나서 국물을 계속 마셔본다. 적당하게 간이 배어 있는 것이 시원하면서도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조미료 하나 없이 한우를 넣고 끓여 이 정도로 깊은 육수 맛을 만들어내며 냉면의 계절이라는 여름이 지나갔어도 여전히 유효한 맛이다. 

냉면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김천의 원계서원이라는 곳이 있다.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곳으로 1927년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송응현(宋應賢)과 그의 아들 송걸(宋傑)을 제향 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원계서원의 원계(遠溪)는 멀리 하다는 멀 원에 시내 계를 사용한 서원이다. 내로 흘러들어 가는 산골짜기의 시냇물이 모이면 천이 된다. 천이 모이면 강이 된다. 모든 것은 뿌리라고 해야 할까.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원계서원은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다. 은진송 씨인 송응현은 자가 사희(士希), 호는 양오당(養吾堂)이다. 밀양 화악산 아래 살면서 인근에 정사를 지어 양오당이라 이름하고 후진양성을  하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와 협력하여 적을 토벌하기로 약속한 후, 의병을 이끌고 곽재우에게 가는 도중 적의 대군을 만나 싸우다가 아들 걸과 함께 전사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전장에서 죽자 두 부자의 사망 소식을 들은 송응현의 부인 광주김 씨도 남편을 따라 자진하였다고 한다. 

문은 닫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항상 열려 있는 곳이다. 문을 밀어서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서원은 외삼문, 강당, 내삼문, 충덕사(忠德祠)로 구성되어 있다. 외삼문에는 ‘충의문(忠義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좌측 협실은 ‘집의당(集義堂)’, 우측 협실은 ‘경의재(敬儀齋)’라 편액 하였으며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며, 평면은 가운데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잘 익은 대추가 대청마루에 놓여 있었다. 빨갛게 익어가는 대추도 이제 대부분 수확을 끝을 냈다. 대추 하면 논산의 연산이 유명한데 올해에는 대추를 보러 가지 못했다. 그가 왜군과 싸우다가 죽자 1605년(선조 38)에 도승지 신흠(申欽)이 전지(傳旨)를 받들어 송응현을 선무원종공신이등(宣武原從功臣二等)에 병록(幷綠)하였으며, 나라에서는 송응현에게 첨정(僉正)의 벼슬을, 송걸에게 주부(主簿)의 벼슬을 증직 하였다.

사람은 일단 형체를 부여받아 태어났으면 그것을 잃지 않고 다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법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외부적인 것에 탐닉하면 탐닉할수록 자신이 지닌 것은 고갈되고 손상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스스로 아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했던가. 

막약이명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풀이하자면 텅 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밝은 지혜로 본래 그러한 모습을 관조해야 한다고 해석해 볼 수가 있다. 편견이라는 것은 결국 주관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김천의 안쪽까지 들어와서 냉면 한 그릇을 정성스럽게 먹고 원계서원을 돌아보았다. 선조를 기억하며 이곳을 지은 송준필이라는 사람은 일제강점기에 파리장서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김천시 부곡동 음지마을에 정착하였다. 김천에서 학문을 완성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942년 원계정사를 세우고 이후 송준필의 제자들과 유림들은 송준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8년 원계서원을 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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