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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프롤로그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행복이 솜사탕과 같다.

행복이라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순간에 찾아오는 화양연화와 같은 추억에 새겨지는 것일까. 행복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같은 척도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살기 위해서는 행복해야 한다는 말도 있고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말도 있다. 가장 많이 화자 되는 것은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라는 표현이다. 어떤 것에 대해 행복을 느낄지는 살아온 환경, 현재 처한 환경, 미래에 대한 기대 등이 혼재되어 현실화되기도 하고 무감각하게 지나쳐가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보니 출발점이 벌써 정해져 있다. 출발점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사회의 의무 혹은 권리라는 공교육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가정환경이 다른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환경은 평생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떤 부모는 비교되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아이에게 더 많은 노력을 통해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입을 하기도 하며 가치관에 심각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자신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강요한다면 그 아이는 과연 쉽게 납득이 될까.

행복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일까.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결과나 가진 것을 통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행복은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주관적인 경험의 척도로 만들어지는 감정의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더 어려운 것을 이루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분명히 간절히 원했던 것인데 이루고 나면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행복이 아니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모든 일들이 항상 잘 될 리가 없고 세상은 계속 슬프지만도 않다. 살다보면 화가 나는 일도 생기고 왠지 시니컬 해지고 싶을 때도 있다. 온난화로 인해 갑자기 세상이 다 말라버리지도 않을 텐데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최선을 다해 뒷걸음질을 해서 뛰어간다고 해서 방금 지나간 시간에 대한 자신의 행동을 되돌릴 수는 없다. 과거를 바꿀 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면서 지나가고 사소한 것을 잡기 위해 소탐대실하기도 한다.

운전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실수 아닌 실수를 할 때가 있다. 그러고 나면 계속 머릿속에서 그때의 기억이 머리를 맴돈다. 과속을 하였던 신호를 위반하였든 간에 잊지 않고 과태료나 벌금을 내달라는 고지서가 친절하게 방문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머릿속에서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서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건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삼사라(saṃsāra)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윤회를 의미한다. 삼사라의 의미 중에 함께 흘러가다는 의미가 있다.

행복한 상태와 행복하지 않은 상태, SO SO 한 상태가 번갈아가면서 기쁨, 슬픔, 분노, 걱정등이 흘러가듯이 계속 번갈아 찾아온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행복하지 않은 상태인가.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이 슬픈 상태는 행복하지 않은 상태인가. 만약 계속 기쁜 상태에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정상적이지 않다. 사람의 뇌는 끊임없이 감정의 균형상태를 만들려고 노력을 한다. 그런 상태를 깨트리는 것은 마약과 같은 향정신성 물질이다. 행복이란 기쁠 때 기뻐할지 알고 슬플 때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하며 분노할 때 건강하게 화를 낼 수 있어야 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찾아온다. 그걸 반대로 하게 되면 사람은 불행하게 된다.

행복의 밀도는 나이에 따라 현재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성인이 된 사람에게 사랑한다면서 종이학 1,000마리를 정성스럽게 접어서 유리병에 넣어서 준다고 해서 기뻐할 사람은 많지가 않다. 행복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성장하면서 경험한 것 중에 가치 있는 것들을 구분해내야 한다. 행복을 얼마나 많이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행복의 밀도는 크기보다 간격이 중요하다. 자신만의 행복의 지도가 있다면 누군가와의 비교로 인해 불행해질 가능성도 줄어든다.

일단 세상에 나오게 되면 정해져있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있다.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제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제어할 수 없는 것에 집착을 하게 되면 행복해질 확률은 더 낮아지게 된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가깝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조차 거의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불분명한 미래는 오지 않았고 지나간 과거는 기억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가까운 곳에서 때론 상처를 입히는 가족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사회 역시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가 않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지만 생각하기 나름에 따라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 작가 J. M. 배리는 “행복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는 일을 좋아하는 데 있다(The secret of happiness is not in doing what one likes, but in liking what one does)”고 말하기도 했다.

영어로 happening(우연한 사건)의 어원 ‘hap’은 우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happiness와도 어원이 같다. 우리는 우연하게 이 땅에서 살고 있으며 우연하게 지금의 가족과 만나고 노력했지만 우연하게 자신이 하는 일을 선택했고 우연하게 현재도 살아 있다. 분명한 것은 사회적인 성공이나 물질적인 풍요가 그 열쇠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주 바뀌는 열쇠가 있다면 그걸 찾는 데에만 평생을 다 써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주변에는 정신건강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통계학자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의 행복을 재단하고 평가하며 심지어 그건 불행한 상태라고 단정내리기도 한다. 세상에 행복이라는 잣대가 그렇게 표준화할 수 있다면 세상은 정말 삭막한 세상이 되었을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고 살아갔으며 죽었는지 역사학자들은 기록하지 않는다. 즉 당신이 행복했건 말건간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행해진 행복에 관한 가장 긴 연구는 하버드대에서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성인 발달 연구’라고 한다. 그 연구에서 밝혀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결정적 요인은 재산도, 명예도, 학벌도 아니었다. 우리의 삶은 경제, 사회, 심리, 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미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그때는 행복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행복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의미 있는 변화가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의 언급하는 자유에 따르는 모든 위험과 불확실성을 스스로 책임지는 한, 다른 사람에게서 일체의 물리적, 도덕적 방해를 받지 않고 각자 생각대로 행동하는 자유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듯이 행복의 척도 역시 누군가에게 방해받지않고 불확실성을 심내히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 없고 좋음과 나쁨이 칼로 자른듯이 나뉘어지지 않는 것이 행복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 매력있는 친구를 어떻게 옆에 두어야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당신이 유일하게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놔둬보자. 약속하지 않고 언젠가는 찾아올지 모르는 행복이라는 친구가 어떤 기쁨을 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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