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Nov 02. 2023

의지의 송인

충북혁신도시에 조성되어 있는 송인공원과 송인묘소

명절이 되면 선물하는 생선중에 대표적인 것이 굴비다. 간이 배어 짭짤하면서도 꾸덕꾸덕한 질감으로 인해 먹는 재미가 있다. 고급식품이면서 법성포를 연상케 하며 보리단지에 묻어 놓았던 굴비는 보리굴비라고 하여 더욱 가치가 좋은데, 특히 녹차에 밥을 말아 얹어 먹으면 은은한 녹차와 보리 향이 느껴지게 한다. 그 이름은 정치적인 야망을 넘어서 신념이라는 것과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자겸이 지었다고 한다. 자린고비의 설화의 주인공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과욕이나 그 허물을 보지 못하고 마치 자신만이 옳은 것처럼 말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역사는 그 사람을 객관적인 관점으로 평가하게 된다. 고려시대 이자겸이라는 사람은 친족들을 요직에 배치하고 관직을 팔아 자기 일당을 요소요소에 심어두었던 사람이다. 정직과 공평, 신념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다. 

충북혁신도시에 보존이 되어 있는 송인묘소와 송인의 이름을 딴 송인공원으로 걸어서 내려가본다. 말과 행동이 달랐던 이자겸은 역경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굴할 ‘굴(屈)’ 아닐 ‘비(非)’자를 써서 ‘굴비(屈非)’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때론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송인이라는 사람의 본관은 진천송 씨다. 외척이며 세도가로 나라를 국정농단하던 이자겸은 결국 자신이 왕이 되기로 생각하고 난을 일으킨다. 이때 척준경이 인종을 호위하던 진천군 출신의 무신이었던 송인을 피살한 것이었다. 

송인(宋仁)[?~1126]은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 두루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아들로 송원겸(宋元謙), 손자로는 송순(宋恂)·송희(宋憘)·송국첨(宋國瞻)을 두었다. 진천 송 씨의 중시조인 송인 장군의 묘는 여느 무덤과 달리 직사각형의 봉분에 긴 돌을 깎아 두른 것이 독특하며 1994년에 충청북도 문화재 지방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다. 

이곳에 자리한 제사를 지내는 상산재는 1992년에 후손들의 성금을 모아 선조를 기리고 제향을 위한 설비로 건축하였다. 들어가는 입구의 경아문은 시경에서 따온 것이다. 높이 공경하고 큰 덕을 따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래된 고목이 충신의 충절을 상징하듯이 이곳에서 터를 잡고 오랜 세월 동안 자리하고 있다. 진천 송 씨 시조인 송인의 9대손인 송석동은 단종의 복위 운동 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세상을 떠날 때 3 부자가 순절하였는데 이들의 희생을 기린 것이 충절수다. 

어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결탁을 하고 자신의 생각과 맞는 사람들만 옆에 둔다. 다양한 생각이 있지 못한 사회는 결국 안으로 곪아 들어간다. 

고려 역사상 최악의 외척이었던 인종 그리고 그 세력을 일소하려 했던 인종과 그를 호위했던 송인은 이곳에 잠들어 있다. 

오늘날 밥상에 올라오면 맛이 좋은 굴비에게는 죄가 없다. 이자겸이 세상을 떠났지만 문벌 귀족은 자신의 권세를 확대 강화하며 고려 정치를 좌지우지했지만, 40여 년 뒤에 발생한 무신정변으로 무신에게 정권을 넘겨주며 고려역사의 어두운 역사를 기록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통영 1박 2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